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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9 09:00 - 독거노인

<Anna and King of Siam>


<왕과 나>라는 영화로 유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특히 기억에 남는 율브린너의 이미지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태국의 왕과 가정교사 간에 존재하는 애정적 관계가 주일거라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하지만 실제 책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태국 왕실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 애나가 아직까지 전제 왕권이 지배하는 태국 방콕에서 겪게 되는 제도적, 정신적 혼란과 19세기 서양적 사고가 가지고 있는 흔한 동양에 대한 편견들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물론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동양과 미개라는 등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은 없지만 애나가 왕실의 시스템과 방콕의 여러 생활상을 체험하면서 그속에 존재하는 동양적 가치관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장면들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세계는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만민이 평등한 인권을 가진 세상이기 때문에 태국 왕실도 이를 따라서 노예제 폐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간접적인 오리엔탈리즘이 가지는 시각 아닐까 -애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여성들은 참정권조차 인정 못 받던 서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인권의 사각지대였지만 그에 대한 의식적 도전(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가 아닐까)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노예제에 대한 혐오직 시각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추악했던 노예제의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런 제도 자체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적으로 얽혀서 전통적으로 형성된 시암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단순한 일면에 집착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화가 강조하던 왕과 가정교사간의 로맨스는 오히려 책에서 깊은 우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변덕스럽기만 한 태국왕과 잘못된 관습에 반항적인 가정 교사는 의견의 차이가 크지만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며 난제들을 풀어가는 훌륭한 콤비다. 물론 애나가 왕과 가까워지면서 동양적인 청탁문화가 자연스럽게 애나에게도 작용하고 청탁과 댓가라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애나는 그저 온정적 정의감에 사건들을 처리해 준다. 이에 대해서 궁정 내부에서는 시기와 불만으로 형성된 반대 집단이 존재하지만 애나에게 딱히 위협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애나가 궁전에서 일하던 시기는 1860년대말이다. 이때 인도차이나의 정세는 유럽의 제국주의 야욕에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던 시기다. 인도와 중국은 영국의 힘에 굴복했고, 식민지 개척에 뒤쳐진 프랑스는 초조함에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캄보디아까지 합병한 상태였다. 실제 그 시기에 인도차이나의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시암의 속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왕은 방콕에 볼모로서 생활하다가 시암 왕의 승인하에 캄보디아 왕으로 인정받고 통치를 시작한다. 캄보디아까지 합병한 프랑스는 시암에 절대적 위협적인 존재였고 실제 영토(시엡립) 이양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치앙마이는 실제 라오족의 왕이 통치하는 지역이었고, 방콕에 주기적으로 조공을 받치면서 반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라오족이 통치하던 치앙마이는 불온한 반란의 온상이 될 수 있어서 방콕에서 보기에는 불안한 지역이었다.

방콕의 왕실은 여러가지 행사가 많았지만, 불교적 제의식과 인도의 영향이 섞인 브라만 승려들의 제의식이 같이 존재했던 것 같다. 실제 브라만 계급이 왕국의 후원을 얻어서 독립적인 거주 지역에 살면서 왕실 행사(정화의식 같은)에 관연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애나는 인도를 거쳐왔기 때문에 인도의 문화는 영국의 영향으로 어느정도 변형이 되었지만 태국의 브라만 계급은 자신들의 문화를 순수하게 보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궁중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현재의 불교적 다비식과는 다르게 죽은자의 살과 뼈를 독수리에게 먹이는 티벳의 천장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티벳의 천장의식은 티벳만의 고유한 장례풍습이 아니고 불교적 장례의식이 정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장례 풍습은 도시화와 현대화가 진행됨으로써 더 이상 유지 되기 어려운 방식이기 때문에 현재의 방콕에서는 사라진게 아닐까 생각된다.


애나에 교육받은 왕자 촐라롱콘은 자유사상에 영향을 받고 왕위에 오른 후 노예제와 폐지와 서구적 시스템 도입에 열성적이었다. 그는 태국의 옛이름이었던  무앙타이(자유의 국가)로부터 영감을 얻어 태국이라는 국가명으로 바꾼다. 이렇게 선구적, 선도적 역활을 하던 왕실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타락하며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는지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이런 말 자체도 아마 태국에서는 왕실 모독죄로 바로 잡혀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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