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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7. 09:00 - 독거노인

<Banaras: City of lights>


바라나시의 초창기 모습은 수 많은 호수들과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은 희미한 흔적들만이 남은 그 호수들에는 작은 제단과 토착적 숭배대상들이 존재했었다. 그 토착 숭배 대상들은 나중에 힌두교의 뿌자 의식에 통합된 꽃, 향, 종, 우유 등의 존재들이었다. 주홍색으로 가네샤나 하누만을 문지르는 것은 쉬바가 숭배되기전 yakshas/yakshis 을 숭배하면서 고기와 피를 바치던 전통이 남긴 흔적이다. 바라나시에 존재하던 커다란 호수들은 바라나시가 개발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어렴풋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다. 18, 19세기 바라나시를 여행했던 여행자들은 그때까지 남아 있던 바라나시의 숲과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도시화가 진행되던 바라나시는 호수의 물을 바라나시 강으로 빼내고 그 곳을 메우는 과정을 거쳤다.


바라나시는 시바신의 성지로 유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시바의 불기둥 링가가 쏟아 오른 곳이며 비슈누와 브라만이 그 링가의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늘과 땅 속을 뒤졌지만 결국 그 길이를 잴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브라만은 자신이 그 끝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쉬바의 분노를 사고 쉬바의 아바타에 의해서 머리를 하나 잃는다(5개에서 4개로 줄어든다). 전지전능한 쉬바이지만 브라만의 머리를 벤 댓가를 용서 받기 위해서 인도 전역을 떠 돌았으나 결국 바라나시에 와서 용서를 얻는다.


쉬바가 머물던 곳은 히말라야의 산이었고 파바티와 결혼하면서 바라나시에 머물게 된다. 세계는 가뭄으로 혼돈의 세상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들은 모두 바라나시를 떠나고 Divodasa가 통치하여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도록 한다. 하지만 바라나시로 돌아오고 싶었던 쉬바는 자신의 신들을 보내어 바라나시를 회복하려 하지만 전령으로 떠난 신들은 오히려 바라나시에 매혹되어 쉬바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비쉬누가 바라나시로 가 평화를 누리던 그들을 부처의 말로 분열을 일으켜 Divodasa가 결국 왕국을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쉬바는 바라나시로 돌아와 영원히 머물것을 선언한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사라나타는 부처가 여러번 여러번 방문하여 설파하던 곳이다)였지만, Qutb-ud-din Aibak의 침략으로 두 종교는 폐허가 되었다. 그 후 힌두교는 재건이 되었지만, 승려와 사원, 교육센터가 중심이 되어 활성화되었던 불교는 재건되지 못했다. 바라나시의 힌두교 사원들은 무굴시절 무슬림들에 의해서 파괴되어서 새로 재건되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진 경우가 많다. 특히 커다랗고 화려했던 사원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무슬림 사원이 들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경우도 많다. 무슬림이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늘을 찌르던 미나르 첨탐은 너무 높게 세워지는 바람에 붕괴 위험 때문에 그 높이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 갠지스강은 힌두교의 성지이지만 무슬림과의 공존을 통해서 생존하게 된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베다의 철학적 면을 강조한 종교다. 힌두교에서 지혜의 추구는 darshanas 즉 "관점 혹은 싯점"이 중요하다. 모든 철학은 진실을 보는 여러가지 시각 중 하나의 방법이다.


바라나시는 바라나시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그동안 쌓아 놓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바라나시에서 죽는 자는 윤회의 사슬로부터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다. 바라나시에 사는 사람은 가장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라나시의 신성함 안에서 살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수천년동안 이어져 온 인도의 신성함이 그들의 삶을 신성하게 만들며 그들이 밟는 시장 골목의 돌 하나 하나에 새겨진 힌두교의 역사와 일치된 삶을 살기 때문에 행복할지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바라나시에서 나는 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씻어 낼 수 있었을까? 바라나시의 강물에 나의 덧없는 생각들을 떠내려 보냈을까? 영원한 윤회의 사슬을 끊고 평안을 얻기 위해서 죽음을 기다리는 바라나시의 수 많은 힌두교들처럼 나도 그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