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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7. 09:00 - 독거노인

<강 동쪽의 기담>


“늦여름 한낮에 장서를 햇볕에 말리는 일과 바람 없는 초겨울 오후에 마당의 낙엽을 태우는 일은, 혼자 사는 내가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일이다. 책을 말리는 일이 즐거운 것은, 오랫동안 높은 선반에 쌓아두었던 책들을 바라보고 처음 숙독했을 무렵을 회상하며 세월의 흐름과 취미의 변화를 생각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낙엽을 태우는 즐거움은 내 몸이 번화한 도시에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각주:1]

“늙은이의 근심은 낙엽과 같이서 쓸어도 다 쓸어낼 수 없도다. 우수수 나엽 지는 소리에 또 이 가을도 보내네”

- 다치 류완


늙어간다는 건 쓸쓸함을 동반한다. 아니 늙는다는 것 자체가 쓸쓸함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도 풍류를 즐기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말년의 자신에게 찾아 온 뜻밖의 사랑에 애절함을 느낀다. 그 애절함이 자신 너무 늙어 버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과 맞지 않는 신분의 여자이기 때문인지 모호하지만 명확하게 이약하고 있는 것은 젊은 기녀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라고 읊조리는 것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늙어버렸음을 한탄하는 것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하는 것인가. 매해 더운 여름은 찾아오지만 매해 지나가는 여름은 그 여름만의 기억을 남긴다. 그래서 매해 모든 여름이 특별해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여름이 기대되고 낯익은 여름의 시작이 반가울 것이다. 이런 다가 오는 여름의 익숙함과 새로움은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를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고 더 또렷히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해의 여름이 지나고 난다면 열정적이었던 에너지들이 사그라들며 그렇게 사멸해가는 잎파리들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또 줄어듬을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가후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리는 20세기 초반 급격히 개발되고 있던 도쿄의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도쿄는 주변의 도시를 집어 삼키며 끊임 없이 확장하고 있었고 그런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술집과 카페는 더 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유흥가는 흥청이고 사람들은 체면을 차지리 않는다. 어쩌면 가후가 시대에 맞지 않는 격식을 요구하는 것이었을까. 그의 에세이에 언급하듯이 그는 사라져가고 변해가는 도쿄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언덕이었던 곳은 깎여 나가 평지가 되고 전철은 새로운 길을 뚫고 지나가며 번화가는 밤늦게까지 흥청이다 추하게 문을 닫는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의 오래전 도쿄이지만 누가나 느끼는 흘러간 시절의 아련한 모습은 나이가 들은 사람이라면 가슴 속 어느 언저리에 뭍고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세세히 숨은 그림자 하나 놓치지 않고 묘사하려는 가후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도 다르지 않다.



  1. 나는 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장에서 국어 교과서에 등장했던 “인연”이나 “낙엽을 태우며”라는 글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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