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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7. 09:00 - 독거노인

<먼 북소리>


하루키의 에세이를 연속으로 읽었다. 그중에서 여행 에세이인 이 책이 나의 오랜 꿈 일부와 연결되어 있어 그 부러움에 글을 써 본다.

누구나 자유로운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곳을 버리고 해외에서 집을 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곳을 찾아 가서 그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이야 많은 이들이 이런 삶을 살면서 책도 내고 긴시간동안 배낭 여행을하지만 하루키가 이런 삶을 살때는 80년대말로 우리나라는 이제 막 여행 자유화가 풀릴 싯점이었다. 내가 90년대말에 이런 삶을 동경했으니 시차가 10년 넘게 나는 것이다. 여기에 하루키의 나이와 직업을 감안한다면 나는 그저 꿈에 머물수 밖에 없는 현실 순응자이고 그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한 히피세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더 부럽고, 내 자신에게 깊은 한숨을 내뱄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글이 무척 재미 있다거나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하루키 열풍을 일으키며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이지만 왜 그렇게 바삭바삭하고 푸석푸석한 글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스타일의 글이 일면 맘에 들기는 하지만 그 푸석푸석함을 받아들이는 건 한두권 정도의 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더 이상 읽으려 들면 마치 과자를 입에 잔뜩 물고 목이 메여서 삼길 수 없는 느낌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소설이 아닌 그 자신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는 좀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어딘가 일본인적인 예의범절이 베어 있고 그렇지만 그 테두리안에 갇히지 않으려 하는 자유로움도 느껴진다. 그가 여행한 이탈리아, 그리스, 로마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이 굉장히 오래된 예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추억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아마 작가가 그 글을 쓰고 발표했을 때는 생생한 기운이 감돌고 신선한 샐러드처럼 풍부한 아삭거림이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유럽을 구경하며 성수기가 지나버린 외진 마을 속에서 자신의 글을 쓰며 바닷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셔주는 장면들은 내 폐부로 노랗게 빛바랜 먼지를 들이키는 듯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어디선가 겹쳐지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분명 가 본적 없고 앞으로도 하루키가 경험했던 그 곳들을 경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지만 단순히 여행 에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실속에 그 이야기를 불러낼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진다. 소설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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