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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25. 09:00 - 독거노인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자본주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로 상품들을 팔아 치운다. 덕분에 더 싸고 더 편해진 상품들을 쉽게 구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으로 자신만의 물건, 자신만의 기호를 반영한 물적 소비는 사라지고 모두가 표준화되고 일반회된 단일 상품들에 집중하게 된다. 공산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는 이런 공산품 목록에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마저 등록해 놓고 사용한다. 단지 땅이 좁고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집을 공급한다는 명목하에. 그리 길지 않은 아파트의 역사가 현 대한민국 사회에 너무 깊숙히 자리 잡고 있어서 주거 공간에서 아파트를 벗어나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중산층이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으니 주거공간이면서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아파트를 어떻게 버릴수 있겠는가.

단순한 사각박스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탈을 꿈꿀수 밖에 없다. 그저 어린 시절 마당에서 놀던 그런 공간을 가진 단독주택을, 아니면 주위에 산과 들이 있는 전원 주택을. 그런 상상은 현실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달콤하다. 그 달콤함을 찾아서 꿈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있다. 저자도 그런 자신만의 꿈을 찾아서 남산 기슭에 집을 짓기로 결정한다.

꿈을 찾아가는 길이 멀리서 보기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현실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문제들에 부딪히며 괴로움을 당하는지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실적인 허가문제부터 집짓는 과정에 만나는 건축현장이 부조리. 이것들이 한국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인간이 공산품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산출물에 따르는 고통인지 알 수는 없다. 분명 한국의 건축현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일들을 예전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20년 가까이 흘렀는데 변한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 일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오배수 설비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다. 철 없던 시절이라 무엇이 옳고 틀린지 알지는 못했지만 똑 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층들에 오배수관이 하나도 같은 길이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전선설비관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거나 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파트 읾 이외는 서로 협조나 뒤에 이어지는 공정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염두에 없고 일정내에 공사를 완료하는게 우선이었던 시절이다. 지금도 이런 관행은 여전하고 아마 저자도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듯하다.

그나마 저자는 건물 외관에서만 혹독한 경험을 한것으로 끝났다. 부인이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이라서 아마 내부 인테리어에 있어서는 일반인이 겪는 트러블을 거의 겪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일반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 인테리어다. 요즘이야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서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지식이 없는 무외한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바로 바가지 요금과 부실 시공에 시달리는 대표적 공사 현장이다. 아마 아파트에 살아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 인테리어 공사다. 물론 돈으로 해결하면 편하지만 누구나 넉넉한 공사대금을 준비하고 덤벼드는 건 아니며 최대한 쥐어짜는 상황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게 인테리어다.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집은 한국인이 가진 큰 자산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내가 잘한 선택인지, 땅을 잘못 산것은 아닌지, 향후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등등. 저자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낸다. 남산을 끼고 있고 향후 용산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녹지 공간 형성 등으로 자신의 집이 가치를 잃지 않고 투자의 성공으로 이어질거라고 믿으면서. 이 땅에 사는 일반인은 그런 자신의 신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일탈을 꿈꾸는 이라도 자신의 재산이 줄어들거나 투자가 실패하는 것을 어떻게 쉽게 감내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심리적 마지노선에 자신들이 찾은 가족간의 행복과 자신이 지은 집이 주는 편안함과 위로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