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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5. 09:00 - 독거노인

<숨결이 바람 될 때>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 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숨결이 바람 될 때> 본문 中


우리가 세상에 왔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언제 세상을 떠날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왔으며 죽음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려져 있다. 막상 죽음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처럼 가장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죽음은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고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은 숙명이다.

저자는 전도 유망한 외과 레지던트였지만 자신의 성공이 얼마 남지 않은 싯점에 폐암말기 판정을 받는다. 30대에 그것도 극히 희박한 확율로 발생한다는 폐암이다. 과연 이런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에게는 보장된 미래도 있고 사랑스러운 동반자도 있다.

아마 의사라고 하여도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을 초월한 초인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순간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며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새겨본다.

그는 어린 시절 기독교를 믿었고 문학을 사랑하여 의사가 되기 전에 문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과학적 사고에 영향 받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종교는 성장과 함께 그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 순간 종교적 의미도 다시금 살아난다. 그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자신의 사후에 갈 수 있는 세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되새기는 의미의 종교적 과정이다. 단순히 기복적 종교를 벗어나 진정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종교가 가지는 의미다. 그리고 그 삶의 의미에 되새기고 의미에 의미를 더하며 주어진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다. 결국 그가 의사 생활에 매진하면서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잠시 미뤄두었던 문학적 삶이 그의 삶을 받아들이게 해 준 것이다.

죽음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고 그 삶의 과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잘못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지나가 버린 시간들 속에 있는 삶의 의미를 뒤돌아 보고 그것이 잘되었던 잘못되었던 받아들이며 후회하지 않는 것이 곧 죽음에 이르는 과정일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 순간 죽음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자신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주위의 지인들도 하나둘씩 아프기 시작하고 어느 덧 장례식 소식이 더 자주 들리는 나이가 되었다. 내 삶에서도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고 현재에 의미를 부여해야된다고 자위하지만 결국 현재를 살고 있는 단순한 인간이기에 삶의 궤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이고 있는 자신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과연 나에게도 외롭지 않은 죽음이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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