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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4. 11:41 - 독거노인

[태국 치앙칸] 9월 11일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잠결이라 에어컨 돌아 가는 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분이 안되었는데, 빗소리가 커지면서 물난리가 나는 게 아닌가 잠결에 생각들 정도로 쏟아 붓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새벽에 쏟아 붓던 비는 그쳤고, 비 온 뒤에 이어지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덕분에 뜨거웠던 어제의 열기를 잊고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다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시장으로 간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이곳은 아침에 활기가 느껴지는 곳은 시장 밖에 없다. 7시가 안된 시간이라 어제 마셨던 두유를 다시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벌써 다 팔고 문닫고 있는 중이다. 할 수 없이 어제 먹었던 국수 집에서 다시 아침을 먹는다. 어제 왔었던 사람이라고 국수집 아주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 준다. 국수를 가져다 주고 탁자 위에 있는 양념통을 열어 간을 맞춰준다.








어제처럼 두리안을 산다. 하지만 어제보다 좀 더 크고 비싼 두리안을 산다. 두리안은 과육이 크면 씨도 커지지만 그만큼 과육이 부드럽고 달콤하다.

아침 산책으로 치앙칸 길 끝 공원으로 간다. 몇몇 운동하는 사람과 나 같은 관광객 몇명이 있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한산함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강물 구경을 하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했다. 예전에는 숙소에서 빨래하는 건 실례인걸 알기 때문에 빨래는 모두 맡겼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실례보다는 들고 다니는 가방 무게를 생각해서 옷도 몇벌 안 넣고 다니니 빨래를 바로바로 안하면 입을 옷이 없다. 냄새 나는 옷을 몇 일씩 입는 걸 참을 수 없으니 그때 그때 손 빨래를 해 널어 놓는다. 태국같이 더운 나라에서는 빨래는 하루면 바짝 마르기 때문에 빨래를 해서 널기만 하면 만사 해결이다. 숙소 물 사정이 안 좋아서 샤워기나 세면대 수돗물이 졸졸 흐른다. 화장실을 대충 둘러보면 원래 없던 방과 화장실을 새로 확장해서 만든 게 눈에 확연히 들어 난다. 아마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집을 개조했을 것이다. 이런 개조 덕분에 오래된 목조 가옥의 정취가 그대로 베어 있는 방에 묵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물 사정 안좋은 건 이해된다. 게다가 나무 바닥 느낌이 나에게는 너무 좋다.



서울에서 보내는 평소 주말 아침은 분주하다. 일주일치 도시락용 음식을 장만해야 되고 반찬도 만들다 보면 오전 한나절은 훌쩍 가 버린다. 게다가 간간히 청소도 해야 하고 하니 주말의 한가함이란 나와 상관 없는 일상이다. 그래서 이런 한적한 곳에서 느긋하게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주말 아침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한적함이 주는 여유 덕분에 은퇴하면 이런 시골에 숨어 들어서 세상과 절연된 상태로 한동안 살고 싶다는 망상을 한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흘러 가 버리니 예전 꿈꾸던 동남아에서의 삶에 대한 생각도 같이 흘러 가 버렸다. 이제는 그저 온전히 은퇴를 꿈꾸는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태국을 좋아하는 어느 블러거의 글에 ‘지금 당장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제 떠나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떠난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각오가 되었을 때 영원히 떠날 것이다’ 라고 씌여 있는 걸 봤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나이가 되고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 나이가 된 듯 하다. 영원히 길 위에 머뭄을 꿈꾸던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점심은 어제 지나가다 봤던 스테이크 집에서 치킨까스를 테이크아웃 했다. 어제 저녁에 보니 지역 사람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엄청 잘 되는 집이다. 서양식 튀김 음식점이 없는 동네에서 시즐러나 아웃백 같은 존재인 듯 하다. 세븐일레븐에서 맥주 한캔 사서 강가 그늘로 가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햇빛이 강하니 그늘이라는 느낌이 없다. 단지 햇빛의 따가움만이 없을 뿐. 강 맞은 편의 파란 하늘 아래 있는 짙은 적막감이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강 하나로 태국과 라오스가 접하고 있다. 그 강을 기점으로 선연히 대비되는 마을의 모습이 있다. 숲 사이로 어쩌다 보이는 건물과 저녁이 되어도 불빛이 잘 보이지 않는 라오스 마을. 그저 한낮에 망치 두둘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여온다. 이쪽 태국쪽은 강 주변으로 숙소들이 즐비하다. 라오스쪽 마을처럼 한낮에는 적막감으로 감싸여 있지만 그 그늘 밑으로 사람들이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여주인이 공짜 물과 커피가 있으니 마음껏 이용하라고 한다. 숙소가 훌륭한 경치나 시설을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친절함은 최고다.



해질 녘의 거리는 장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 분주함이 어제만큼의 활력을 불어 넣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토요일의 여흥을 즐기고 떠난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서양 여행자들은 찾기 어렵고 거리가 좁다 보니 한국인 커플 하나가 자주 눈에 띈다. 치앙칸이 태국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라서 그런가보다. 심심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한적함이 있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 좋은 지방의 소도시 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른 시간에 장사 준비를 하는 골목길 사이로 맛사지 집이 보여서 들어 갔다. 맛사지를 받겠다고 하니 문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직접 맛사지를 해 준다. 나는 맛사지사를 따로 부를 줄 알았더니 할머니가 직접 맛사지를 해 주시는 바람에 부담감과 실망감이 교차한다.

저녁은 길거리 간식으로 이것저것 먹어보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다. 단지 딤섬집에서 파는 버섯탕이 매콤하면서 맛이 좋다. 양이 적은게 흠이지만 딤섬에 같이 먹는 탕이니 나처럼 탕만 먹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적한 강변을 걷다 숙소로 돌아가 이른 취침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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