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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 14:49 - 독거노인

[태국 치앙마이] 9월 17일


아침은 어제 산 찰밥과 마른반찬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 한다. 디저트는 과일 한 팩. 간단한 아침이라고 생각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 식사이기도 하다. 아침을 먹자마자 므앙마이 시장으로 향한다.

매일 아침마다 배가 오고 그치지만 비가 그친 후 바로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 그 열기가 엄청나다. 길이 익숙하고 나름데로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 길로 가니 시장이 가깝게 느껴져 다행이다. 시장 입구에 다다르니 어제 내 앞에서 두리안을 사던 서양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시장 입구쪽으로 사라진다. 아침마다 여기로 장을 보러 오는 모습이다. 오늘 시장에 온 목적은 두리안과 대나무 찰밥이다. 시장 구경이야 이미 했으니 더 할  필요 없고 바로 두리안 파는 가게로 향한다. 어제 썩은 두리안을 샀던 경험으로 오늘은 제대로 된 두리안을 고를려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가게로 갔는데, 껍질채 파는 두리안 말고도 과육만 발라서 포장해서 파는 두리안도 있다. 대충 가격을 물으니 저울에 달아보고 1킬로에 90밧을 부른다. 그 옆에 포장 안된 과육 한덩어리를 더 더해서 100바트에 하자고 하니 안된다고 하면서 110바트면 좋다고 한다. 뭐 내 입장에서는 썩은 두리안 고르느니 이렇게 확실한 두리안을 10바트 더 주고 사는게 이익이다.

대나무 찰밥만 사면 오늘 계획은 완벽한데, 역시 계획데로 되는 건 없다. 어제 찰밥을 팔던 노점상에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주말이라서 안파는 건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파는건지 알 길이 없으니 아쉬운 마음을 다 잡고 숙소로 돌아온다.

카페 graph에 가기 위해서 골목길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고소하면서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서 두리번 거리며 담장을 넘겨다 보니 우리나라 뻥튀기 기계 같은 통에 모터를 연결해서 커피를 볶고 있다. 화력은 야자수 껍질 같고 온도 조절 장치는 안 보인다. 통에 뚫려 있는 구멍과 연결 부분의 구멍에서 커피 태우는 연기가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오전 시간은 graph에서 일기 쓰며 커피 마시며 한가하게 보낸다. 3~4명이면 꽉 차는 공간인데 오전부터 손님들로 꽉 찼다. 커피맛은 정말 좋은데 낮은 탁자와 좁은 공간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점심은 graph 카페와 같은 형제가 한다는 graph table 로 가서 피자를 먹기로 한다.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글에 보니 태국에 놀러온 이태리 친구와 NGO 사람들한테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배웠다고 한다. 커피 맛이 훌륭하니 같이 연계된 피자 가게도 기대감을 높인다.

graph table 도 graph 카페와 비슷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 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가게 바로 앞 시장 골목이 공사 중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나 밖에 없다. 주문을 하면 직접 만든다고 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 뭐 남는 게 시간 밖에 없는 여행자에게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피자를 받아보니 일단 모양은 그럴싸하다. 게다가 바로 구워져 나온 것이니 치즈가 일품이다. 하지만 크러스트 부분은 영 맘에 안든다. 분명 발효가 모자라거나 오븐의 온도가 안맞았거나 하는 문제가 있는 크러스트다.

빵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동남아에서 제대로 된 빵 만나는 쉽지 않다. 특히, 발효가 제대로 안된 빵들이 많다. 이 발효 부족과 오븐의 부적절한 온도 부분은 결국 비용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 이게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기 애매한 부분이다. 게다가 발효가 잘되고 잘 구워지기 위해서는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를 사용해야되는데, 결국은 유럽산 밀가루(아니면 품종이 개량된 밀을 그 지역에서 재배한 밀가루)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쌀이 주식인 동남아에서 이런걸 신경 쓰면서 만든다는 건 결국 높은 비용으로 이어진다. 이미 풍부한 먹거리가 있는 나라에서 굳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빵의 위치가 간식이라는 의식이 강한 나라에서 식사용 빵으로 만들어 판다는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 문화가 발달한 동남아에서 커피의 발전을 보면 이런 기대가 꼭 과한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에스프레소라는 개념도 없었고 커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여행하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지금 태국의 커피 문화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 온 느낌이다. 이제는 외진 조그만한 구멍가게에서 조차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다 놓고 한잔에 최소 40바트 하는 커피를 팔고 있다. 융에 커피 가루를 넣어 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물을 부어서 주던 노점 커피를 찾기가 더 힘들어져 있다. 이 만큼 커피 문화가 발전했다면 빵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 본다.

숙소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산과 구름 사이로 치앙마이 공항에서 뜨는 비행기들이 간간히 보인다. 후끈한 열기를 가득 머금은 방안에서 바라 보는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그리고 그 사이를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는 여행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좋은 이미지다.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 지난 여행을 그리워할 때쯤이면 이렇게 답답한 공간에서 바라보던 저 푸른 이미지를 떠 오릴 것이다. 게다가 정면 창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무에는 새들과 다람쥐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이 방을 스쳐가는 수 많은 여행객들이 봤을 저 나무와 동물들. 그들은 그렇게 스쳐간 여행객들을 기억할까.





저녁에는 토요 시장이 열린다는 우왈라 거리로 갔다. 5시쯤되니 이제 막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노점상들이 보인다. 시장 초입에서 므앙마이 시장에서 마주쳤던 두리안 할아버지를 또 본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스쳐지나 간다. 시장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다. 내가 뭘 사겠다는 의지도 없고 그냥 사람 구경하는 재미로 시장을 두러보는 편이라 아침 시장의 활기가 이런 야시장보다는 훨씬 생생하게 다가 온다. 게다가 야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시장마다의 특색보다는 그냥 대동소이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사람들의 흐름을 쫓아서 이리저리 흘러가면서 군것질을 하고 눈요기를 하면 족한 시장이다.





시장 안으로 접어 드니 길거리 맛사지사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맛사지야 저녁마다 가는 집이 있으니 별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데, 왠지 발맛사지를 한번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에 80바트면 그리 손해 볼 것 없어 보여 발맛사지를 신청하니 건장한 남자 맛사지사가 앞에 와 앉는다. 힘은 좋아 보이는 데 맛사지에 영 성의가 없다. 그냥 발만 주물럭 거리면서 시간 떼우는게 전부다. 옆 자리에 앉아서 맛사지 하고 있는 남자 맛사지사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맛사지 끝나고 그냥 나오기 뭐해서 팁으로 10바트 주고 왔다.

어제 더위에 지쳐 걷던 거리는 해진 후에 인파에 휩쓸려 가다보니 금방 끝나는 느낌이다. 해가 떨어지고 본격적인 야시장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 때쯤 시장을 빠져 나온다.

맛사지 가게에서 시장에서 모자랐던 맛사지 부분을 보충받기 위해서 오일 맛사지를 신청 했다. 오일 맛사지라고 해서 등에 오일 바르는 정도로 생각했는 데 속옷 한장만 남기고 다 벗어야 된다. 약간 부끄러워지는 맛사지이기는 하지만 오일에 시원한 향과 느낌이 섞여서 부끄러움은 금방 잊혔다. 게다가 뜨거운 햇빛에 가려웠던 피부들이 시원하게 진정이 된다.

맛사지 끝나고 가게 주인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눠 본다. 오늘 내가 가게 첫손님이란다. 비수기라 골목길 맛사지 가게들은 경기가 안좋단다. 그나마 도로변 맛사지 가게들은 괜찮지만 자기들은 11월이나 되어야 손님들이 올거란다. 아마 다음달 10월에 중국 국경일(쌍십절)이 있어 그때부터는 중국 손님들이 많이 올건데, 중국 손님들은 너무 시끄럽다고 인상을 살짝 찌프린다.


맛사지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숙소 골목 초입에 빨래 가게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태국 말로 뭐라 인사를 한다. 아침에는 골목 길 카페 주인이 인사를 했다. 일주일도 안된 사이에 골목 사람들에게 얼굴 도장 확실히 잘 찍고 다녔나보다. 점점 익숙해지는 생활 패턴과 사람들이 생기니 떠날 때가 다가온다. 이렇게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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