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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 14:51 - 독거노인

[태국] 9월 19일


저가 항공은 물조차 사 마셔야 된다고 들었는데 한시간 날아가는 녹에어 비행기 안에서 간단한 소시지 방 하나와 물을 준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다가 단순한 간식이라도 받으니 갑자기 행복해 진다.

새로 생긴 수완나폼 공항은 밤새기 최악의 장소라고 들어서 과연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발권까지 단지 4시간만 버티면 되기 때문에 최악에는 의자에 앉아서 버틸 생각을 했다. 막상 공항 안에 들어가니 빈 의자들이 꽤 있어서 두 다리 뻣고 잘만했다. 게다가 선잠이라도 잤으니 이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새벽에 눈 떠 보니 내 앞의자에 나처럼 누워자는 중국 처자들이 있다. 나중에 보니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처자들이었다.

새벽부터 긴 여정이 시작된다. 홍콩 공항에서 4시간을 다시 대기한다. 맥주와 쇼핑으로 시간을 보내니 나쁘지 않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곳 홍콩. 나에게 여행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 곳에 다시 돌아왔으나 몽롱한 정신 때문에 예전 감회를 되새길만큼 마음의 바닥이 들어나지는 않는다. 왜그럴까? 사실 태국보다 설레임과 긴장감과 기대감은 더 강하게 느껴져야 하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그저 어디론가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인 것처럼만 느껴지는 곳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처럼.

홍콩을 출발한 비행기는 대만을 들려서 다시 환승을 하고 한국으로 출발한다. 비행기가 완행 버스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기내식은 자주 먹지만 예전처럼 뿌듯하지는 않다. 예전 저가 항공만 찾아서 태국으로 가던 시절에 정식 식사만 4번을 했던 적도 있다. 그때는 기내식이 너무 맛있었고 먹어도 먹어도 들어갈 빈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허기진 마음이 배부른 몸을 속이고 있었나 보다.


이번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나의 첫 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돌아갔던 곳은 이미 그곳이 아니었다. 이제 태국은 가이드 북 없이 지도 한장 달랑 들고 떠돌수 있는 곳이 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싸구려 숙소를 찾고 싸구려 음식을 탐하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는 방관자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이 악물고 물 한모금 안마시며 12시간을 이동하며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미친 듯이 떠돌던 시절. 한번의 여행의 충격은 몸 구석구석 박혀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흔처럼 상처를 남기던 시절이었다. 아마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풍경들이 스쳐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열병 같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이마에 남은 미열만이 혼미했던 정신에 헛꿈들을 보여준다.


치앙마이 Graph에서 마시던 아이스커피가 그리워진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부러웠던 이들은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는 서양인들이었다. 현지들과 섞일 수 없지만 자신들만의 삶을 태국인들과 어떤 접점을 만들고 거기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그들의 가치관에 붙들려서 옹고집쟁이처럼 매달리는 모습이 아니라 유연하게 태국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처럼 그 삶 속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태국에 정착하겠다고 아니 태국이 아니어도 영원히 동남아를 떠돌며 살겠다는 시절은 가버렸다. 몸안에 타오르며 어디로 뿜어져 나갈지 출구를 찾지 못하던 고통스럽던 욕구가 정처 없이 떠돌게 만들었던 시절이다. 이제는 그 에너지도 사라지고 그저 지나가는 시간만이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시간이 왔다. 그리고 이 시간마저도 지나갈 것이며 다가올 시간은 어떤 형태로 올지 알 수 없지만 그 옛날 꿈꾸던 그 꿈의 일부를 품고 싶다는 작은 열망의 찌꺼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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