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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6. 09:00 - 독거노인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 사진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을 본 후, 한참이 지났어도 도저히 첫 단어가 떠 오르지 않았다. 아니 떠 오르지 않았다기 보다는 그녀에게 이끌려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사진을 찍던 시절에 미국에는 뛰어난 사진가들도 많았고 사진적 역사에 획을 긋는 사진가들이 존재 했다. 우리는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역사와 방향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비안 마이어를 논하는 것은 그녀 자신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그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다이안 아버스 같은 기이함도 낸골딘의 육체적 질감도 게리위노그랜드 같은 거친 느낌도 없다. 그녀의 시선에는 모든 것들이 잘 균형 잡힌 구도 속에서 튀어 나올 수도 들어 갈 곳도 없이 고정되어 있는 느낌이다. 인물들은 위화감 없이 그녀의 사진 속에서 보는 이를 쳐다 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온전히, 어떤 왜곡도 없이 그대로 들어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비안 마이어의 시선에 같이 녹아 들어간 것일까.


이 사진들은 끊임 없이 나를 끌어 댕긴다. 어쩌면 사진의 이면에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하면서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픈 유혹에 저항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속에 존재할 수 없음을, 내가 그녀의 사진 속에서 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표면에서 그저 겉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사진, 그녀의 self-portrait 속에 등장하는 어린 여자 아이의 눈길에 그 저항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진은 다른 사진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더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한다.


비비안 마이어 자신이 등장하는 self-portrait는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듯이 그녀가 세상을 향해서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다가 온다. 하지만 단 한장의 사진, 그녀와 그녀가 보모로 돌보고 있는 소녀의 사진이 등장하는 순간, 그렇게 끈질기게 저항하던 사진의 표면에 파문이 일며 그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예의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 사진이 주는 그녀만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등장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여자 아이의 눈길은 도저히 거부 할 수 없는 자신감으로 나를 휘감아 무릎 꿇게 하였다.


이 한장이 사진에 들어난 여자 아이의 눈빛은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듯이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어떤 물질적, 사회적 권위와 지위에 기댄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당당함을 보여주는 아이의 눈빛. 그 눈빛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배경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아이가 보여주는 그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가 이야기하는 방식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그 self_portrait 사진이 가지는 힘이다. 이것이 사진에 빨려 들어가는 힘이고 그 내부에서 나에게로 향하는 눈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무수한 의문과 절망감을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시발점이 된다.


나의 내면을 마주 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마이어 사진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세상의 무수한 많은 정보들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봤으며 그만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보고 싶어서 그렇게 많은 사진들을 남겼는지 모른다. 세상과 나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세상이 보여주는 정보들이 과연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나는 어떤 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가. 단순히 세상이 내미는 손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이어 사진의 힘은 그런 수동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 의구심을 일으키며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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