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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6. 09:00 - 독거노인

[태국 치앙라이] 9월 30일


시계를 잘못 설정했다. 새벽 4시에 알람이 울린다. 도미토리에서, 게다가 2층 침대에서 깜짝 놀라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씻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그제서야 시차 계산을 꺼꾸로 했다는 걸 알았다. 1시간 반 동안 에어컨이 춥게 느껴지는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뒤척인다. 새벽 5시반인데 거리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다. 동남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역시 대만도 먹거리 장사들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된 식당은 없다. 아무리 동남아라도 나처럼 새벽에 길거리를 헤매고 다닐 사람은 없을테니까.


차(茶)를 많이 산 덕분에 세금 환급이 많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냥 만원도 안되는 작은 돈 정도가 환급됐다.


대만은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먹는 물가와 교통비는 체감상 싸게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는 대만과 홍콩은 거주 주택비용이 너무 높아 일반 중산층까지도 고통 받고 있다고 들었다. 공항에서 타이베이 중앙역까지 들어오는 동안 보이는 모든 건물들은 높이 솟구쳐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밀집된 지역들 사이로 강과 그 옆으로 잘 형성된 공원들은 그런 문제들을 덮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대만은 80년대와 90년대 영화를 통해서 보여준 끈적한 이미지의 모습이다. 우리나라만큼이나 낡고 거칠게 보이는 풍경들. 나는 그 풍경과 하늘을 쳐다보기 힘들게 높이 솓구쳐 오른 지금의 모습과 어떻게 조우 시킬 것인가.


대만도 명절에 다들 떠나는지 심사대 줄은 길기만 하다. 사람이 많다 보니 심사대 직원들도 여권 검사나 수화물 검사를 세세히 하지 않는다. 에바 항공은 한국을 떠날 때도 연착하더니 대만을 떠날 때도 똑같이 연착을 한다. 돈무항 공항에 예약 해 놓은 국내선 비행기를 놓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기체가 커져서 좋아했는데, 연착은 차이가 없다. 게다가 항상 불길한 일은 겹쳐서 오듯이, 태국 입국 심사대에 내 차례가 되어서 여권을 제출하니 PC가 다운 되었다고 출입국 관리 직원은 초코렛 까먹으면서 다리를 떨고 있다. 내 마음도 그 다리 박자에 맞춰서 떨리고 있다. 지금 당장 나가서 돈무앙까지 가는 무료 셔틀을 탄다면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데 입국 심사대에서 늘어진 줄과 멈춰버린 PC는 결국 내 모든 시간을 까 먹고 말았다. 출국 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남은 시간 2시간 반. 아무리 계산해도 국내선 표를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택시를 탔다. 이 정신 없는 상황에서 결국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밴을 부르고 말았다. 밴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가면서 택시 기사가 짐도 없고 동행도 없는데 왜 밴을 불렀냐며, 다음부터는 일반 택시가 훨씬 싸니 그걸 타라고 한다. 이미 나는 택시값으로 치앙라이까지 가는 비행기표 값과 동일한 값을 지불한 상태다.


국내선 출발 한시간 남기고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티켓팅 라인 관리하는 직원에게 시간이 없어서 빨리 좀 처리해 줄 수 없냐고 하니, 한시간 정도 남아서 충분하다며 그냥 줄서서 티켓팅하란다. 이리저리 뛰고 돈도 뿌리고 나니 맘이 진정이 안된다. 그래도 출국장 벗어나 대기장에 들어서니 맥도날드가 보이고 신메뉴로 출시된 카레 파이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겸 간식이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노을은 타들어가던 내 마음만큼이나 붉고 아름답다.


치앙라이 공항에 도착해서 또 비싼 택시비를 낼 생각하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여행의 시작이니 최대한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어 택시 티켓 부스에 가니 웬일로 200밧짜리 티켓을 끊어준다. 택시라고 타고 보니 사설 택시 같아. 덕분에 마음도 진정되고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숙소 바로 앞에 내렸다.


숙소에서는 빈방이 없다고 3인실을 나 혼자 쓰라고 준다. 넓디 넓은 방에 가방을 던져 놓고 동네 분위기 파악하러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서 골목을 돌아다니기 힘드니 별 흥미 없는 야시장 골목을 한바퀴 빠르게 돌아 편의점에 잠깐 들러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하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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