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8. 1. 13. 09:00 - 독거노인

<돈가스의 탄생>


우리나라 음식들을 보면 수 많은 일본 음식들이 스며들어 있다. 번화한 길거리에 나가 보면 수 많은 이자카야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라면 집들과 돈가스 집들이 쉴새 없이 눈에 들어 온다. 번화가가 아니라도 길거리를 걷다보면 김밥집에서도 돈가스를 팔고 추어탕 집에서도 돈가스를 판다. 어른들이 주로 먹는 음식점에 아이들과 같이 왔을 때 아이들을 위한 음식으로 돈가스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 돈가스는 어느 나라 음식일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 넘어온 음식이다. 그렇다면 돈가스를 순수한 일본의 전통 음식으로 보아야할까? 물론 돈가스가 일본 전통 음식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서양에서조차 돈가스라는 음식명은 그대로 사용된다고 하는데,그 원류는 어디서 유래 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 책은 돈가스의 원류를 찾아가고자 하지만 중요한 맥락은 돈가스가 누구에게서 처음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는지가 아니고 왜 돈가스를 만들어냈으며,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돈가스를 먹게 되었는가를 파고 들어간다. 그 밑바닥에는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고 서구화를 추구하던 메이지 유신기에 개혁의 대상으로서 생활방식과 관련이 있다. 서양을 배워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일본 역사의 기나긴 시간동안 유지해 오던 육식금지 문화를 타파하고 새로운 양식 스타일의 서구적 식습관을 강제하게 된다. 위로부터 인위적으로 조성된 식문화가 상명하달식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조선은 고려시대의 불교 문화를 거부하고 유교를 장려했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토속신앙과 불교가 성행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육식에 대한 욕구, 소고기에 대한 욕구는 끊임 없이 이어지고 강해져서 때때로 왕이 농경에 필요한 일소가 없어질 것을 걱정하며 도축 금지령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덴무 천황이 육식 금지를 선언하고 그에 따라서 소고기나 돼지 고기 소비 자체를 포기한 일본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시대다. 물론 육식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이었지만 멧돼지나 원숭이 등의 야생동물을 보약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는 하고 있다고 나온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육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일본 전체에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육식에 대한 권장 몇십년만에 서구 음식들이 일본식으로 변형되어서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대단한 시대적 변화라 생각된다. 단지 한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이런 급격한 변화는 금기에서 보편적 음식으로 변하기 위한 의식의 변화도 중요한 역활을 했을 것이다. 아마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이미 받아들인 덴뿌라나 빵의 일본화 과정과 생선을 쉽게 구하고 많이 소비함으로써 단백질 소비에 있어서 거부감 없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돈가스의 탄생 과정은 고기의 소비에 대한 권장에서 서구적 음식을 일본에 소개하는 과정 중에 태어났다.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곳에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기름에 튀기기보다는 굽는다는 설명이 정확할 서양식 가쓰레쓰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기름에 튀기는 음식 돈가스가 탄생한다. 서구적 음식들이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단순히 일본화 되었느냐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밥과의 조화다. 서양식은 고기 자체만으로 가공되어 요리가 되고 식사가 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밥이 주이고 여기에 어울리는 반찬 혹은 부식으로써 육식이 수반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이는 한국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밥과의 조화를 고민하면서 육식들이 받아들여짐으로써 일식이 가지는 양식 메뉴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음식점들에서 그렇게 돈가스를 선호하고 일식 음식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서 우리나라에 일식 음식점들이 많은 이유중에 하나가 재료 뿐만 아니라 소스, 국물 등이 이미 패키지로 판매되고 있어서 일본 음식점을 오픈하기 쉽다고 한다. 특히 이자카야 같은 경우는 일본 식품을 파는 가게에서 대부분의 재료들을 수급해서 따로 주방시설을 크게 설비하지 하거나 주방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선호된다고 한다. 어찌보면 자신들만의 편의성과 간편성을 만들어 내는 일본인들의 창의성과 응용성에 보여주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와 대조되는 한식의 보수성과 시대에 뒤쳐지는 현대화 작업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음식이란 결국 시간과 시대의 기호에 맞춰서 끊임 없이 변하고 응용되어야 한다. 음식이란 한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도 결국 시간이 누적되어 새것이 낡은 것이 되고 외래 음식이 자국의 전통 음식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육식을 받아들이고 내면화 하는 과정을 되돌아 보고 우리나라 식당들도 뭔가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0) 2018.01.29
<도시의 승리>  (0) 2018.01.17
<블록체인 혁명>  (0) 2018.01.08
일상  (0) 2018.01.05
<The Remains of the Day>, 원주 마지막 순간들  (1) 2017.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