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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9. 09:00 - 독거노인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짧은 현대사 동안에 급격한 변동을 겪은 나라가 있다면 아마도 대만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제 발전 방향은 일본을 헐떡이며 뒤쫓고 있지만, 정치적, 사회적 격변의 방향과 진폭의 크기는 대만을 가장 많이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쳤고, 독재 정권에 의한 강제 이식된 경제개발 모델. 그리고 덕분에 수직 상승하는 경제 활동과 경제적 성과에 따른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의 증가로 결국 민주 정부 탄생까지.

하지만 현대사의 커다란 그림에서는 비슷한 형상을 띄고 있지만 그 세세한 부분은 서로 관심이 없으며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먼 이웃과 같은 존재가 대만이다. 나 또한 중국의 근대사에 관심이 있을지언정 대만에 대한 관심은 미미 했다. 중국의 성장과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커지면서 대만은 그 그늘 속에 가려져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하룻 밤 머문 타이베이가 남긴 인상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하룻 밤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왠지 잊혀지지 않는 도시의 야경이 길게 늘어지며 나를 잡아 끈다. 어쩌면 허샤우시엔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오래 전의 타이베이 도시의 그림자일지도 아니면 애드워드 양의 끈적끈적한 열기가 내 등짝을 타고 흘러 내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돌아가리라 다짐을 했기 때문에 인문적 여행 가이드 북을 자처하는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인문적 가이드 북이라는 테마에 맞게 대만 정확히는 타이베이 시의 현대사에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골목 길들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위해서 사는 그 흔한 가이드 북이 스치듯 맛집과 숙소 그리고 어디가 놀기 좋은 지를 지도 위에 그려 넣고 있다면, 이 책은 타이베이 시가 형성되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진통의 자국을 구깃구깃한 종이 지도 위에 연필로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며 그려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도시가 직선적으로 발전만을 거듭하지는 않는다. 도시는 그 과거의 모습 위에 현대적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이쁜 얼굴로 화장을 하고 관광객들을 맞이 한다. 관광객들은 그 화장 밑에 숨어 있는 민낯에는 관심이 없다. 나처럼 하룻 밤 머물다 가는 여행객들이나 혹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타인들에게 자랑할 사진을 남기거나 SNS에 올릴 이쁜 사진이 나오는 장소를 찾아 다니기 바쁘다. 그리고 그 이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장소가 시간의 겹을 얼마나 두껍게 깔고 앉은 곳인지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타이베이도 급속한 경제적 성장을 거듭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주거 환경과 상업 공간들이 필요 했다. 그런 공간들은 기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이들을 밀어 내고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개발을 필요로 한다. 기존에 거주하던 이들에 대한 배려나 그 공간이 가져다 주는 이익의 재분배에는 관심이 없다. 개발은 당연히 국가와 그리고 거기에 밀접한 권력과 자본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살고 있던 이들에 대한 고민, 재개발을 통한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재분는 자본주의 논리에서 보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다. 아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된 역사적 모습일 것이다. 자본을 가진 이들은 더 넓고 안락한 곳을 차지하고 도로는 자동차나 교통수단들이 더 빠르게 이동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며, 그런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장소들은 공간이 비어 있다는 생각 한다. 하지만 비어 있는 공간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층층이 역사가 쌓여 있고 단순한 지표면만 존재하지 않는다. 타이베이에 지금을 살고 있는 공간들은 먼 일제시대부터 자치하고 있는 편린과 가까이는 중국 내전의 역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도시는 끊임 없이 확장되고 응축된다. 그렇기에 도시 곳곳에 주름을 만들고 서로를 밀치고 하늘로 올라가는 빌딩들 그리고 그 밑으로 흘러가는 도시인들. 그들은 우리처럼 독재의 억압 시기를 견디고 이겨냈으며, 이제는 자신의 선대가 만들어낸 경제부흥 위에서 민주적 현대사를 쓰고 있다. 도시가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도시를 이루는 곳곳의 장소는 소멸과 새로운 탄생을 거듭했다. 그리고 어떤 장소는 새로운 변신에 성공하여 새롭게 기억되지만, 어떤 곳은 과거의 영광만을 안은 채 낡은 뼈대만이 그 영광의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내가 본 높은 빌딩들은 아마 새롭게 태어나거나 새롭게 변신에 성공한 결과만을 잠시 스치듯이 봤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해도 아마 그 층 밑으로 흐르고 있는 과거의 모습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좀 더 깊이 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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