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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4. 09:00 - 독거노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급격한 경제발전을 겪으면서 이에 필요한 인력들을 충당하기 위해서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인력들을 끌여 들였다. 도시가 발전하기 때문에 인구가 빨려 들어온 것인지 혹은 촉진된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분명 도시는 끊임 없이 인구를 빨아 들인다.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효율적인 주택관리는 어려웠고, 어떻게든 늘어나는 인구들을 수용해야 했다. 물론 거기에 군사정권이 가지는 효율성과 성장이라는 주제는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공간을 나누고 계층화 하는 걸로 발전 해 왔다. 돈 있는 사람들은 더 넓은 공간과 더 높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낮고 더 좁은 공간 속으로 숨어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간이 만드는 권력의 차이다. 

도시를 횡적, 종적으로 구획하고 분류하는 것은 잘 하지만, 정작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들은 단조롭기만 하다. 그렇게 높고 번쩍거리는 강남의 거리들이 길을 걷는 보행자에게는 정작 지겹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다른 나라의 거리들이 가지는 눈에 들어오는 즐거움이 없고 거리를 단조롭게만 채우고 있는 환경들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 부재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마을 길은 외부로부터 숨은 굽은 길이었다. 하지만 현대화되고 재개발되어진 우리의 공간은 전통적인 숨은 공간을 효율을 위해서 직선으로 바꾸고 구획화 함으로써 전통적 가치가 들어설 자리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다.

이렇게 단조롭고 지겨운 공간은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이면 누구나 당연히 선호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삶의 즐거움보다는 편하고 자산 가치를 우선시 한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비슷한 공간 속에서 서로를 층으로 나누고 종으로 아파트 단지가 가르면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언젠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쓰리 타임즈’에 등장한 대만의 근대 시공간을 보면서 흠뻑 빠져 든적이 있다. 창기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은 공간 속에 앉아 생활하는 창기의 눈 높이에 맞춰서 문과 창문들이 배열되어 있고, 외부로부터 내부를 분리하는 사적 공간이 존재하며 그 끝에는 문으로 또 다른 외부 공간으로 연결되는 장면들이 등장 한다. 어쩌면 좁은 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한 느낌일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은 나무가 주는 따뜻함이 있고, 공간의 끝에 열려 있는 창 틈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여유가 존재 한다. 아파트의 거실 창처럼 커다란 통유리를 직접적으로 통과해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햇살은 아니지만 잘게 쪼개진 햇살들이 공간을 여기저기 파고 드는 세세함이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설계할 때 단순히 공간을 나누기 위해서 벽을 세우고 안방과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으면 개인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창문이나 미닫이 문처럼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을 달아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아파트라는 공간이 얼마나 쉽게 그 모습을 바꾸고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이 더 여유로워지면서 좀 더 은밀한 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상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편리한 아파트에 살면서 육체적으로 보상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희생하고 포기하는 부분도 존재하는 것은 명백 하다. 아마 이런 답답함이 싫어서 어떤 이들은 도시를 버리고 전원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것만이 모든 사람들의 선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어진 공간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그런 집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아마 알쓸신잡에 저자가 출연하면서 책에 기술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것들은 많지 않지만 웹에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대한민국의 대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되집어 볼만할 것 같다. 도시라는 공간도 생명주기가 있는 생명체로 봐야하며, 대한민국의 도시라는 공간은 한번도 쇠퇴를 거치지 않고 끊임 없이 확대되고 확장되며 증식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 생명력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고 언젠가는 내리막 길을 걷고 다시 재생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구가 줄어들고 일본처럼 버려지는 집들이 생기고 아마 그때쯤 되면 서울의 주변부는 쇠퇴하고 중심부에 더욱 집중되는 순간이 올것이다. 그때는 서울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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