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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8. 09:00 - 독거노인

<존버거의 글로 쓴 사진>


사진에는 말이 없다. 오직 주어진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가가 기록을 남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끊임 없이 그 주위를 배회하는 수 밖에 없다. 그 배회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진정 사진가가 무엇을 찍고자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주위를 서성이던 시간, 그 행위가 이루어지던 순간의 시간속의 상상들이 중요해진다. 그 이해의 순간들이 오면, 어쩌면 사진가와 어쩌면 자신만의 감정이 아닌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중요해질지 모른다. 


존버거의 책은 마치 한장의 사진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장의 사진은 읽어 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저 한순간 쳐다보고 잊혀지는 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상상력을 집어 넣고 이야기를 돌려 받을려면 시간이라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 댓가로 돌려받은 이야기들은 한순간 고정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조금씩 모습을 잃고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얻으면서 바닥 위에 던져진 고무젤리처럼 끊임 없이 변하려 할 것이다. 그처럼 존버거의 책도 짧은 글을 단숨에 읽고 소비해버리기 보다는 조금씩 끄집어 내어 시간을 두고 읽는다면 마치 오래된 전설들이 입과 입을 통해서 그리고 조상들의 기억들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오듯이 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들에게 매일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사라지는 순간은 단순히 우리가 지나친 순간만이 아니다.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침묵하도록 강요 당하는 속에서 우리들의 외침과 발언은 그저 웅웅거리는 소음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이 웅웅거림 속에 묻혀버린 우리들의 순간은 영원히 기록되지 못하고 그저 바람결에 흩어져버리는 먼지들처럼 여기저기 떠돌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책상 위의 먼지를 닦아냈을 때 사람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책상을 덮고 있던 먼지가 아니라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가던 시간의 흔적들이다. 먼지가 쌓이도록 방치된 시간들. 


침묵을 강요 당하고 결국 침묵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 것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도록 묶이는 것이고 이는 결국 자본의 폭력속에서 소비되어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일상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동일하고 고독한 일상. 이는 누구를 위한 일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구를 위한 일상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상의 모자를 씌운다고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의 소비는 자신을 희생하는 댓가로서의 일상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짧은 글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글을 남겨야 한다. 존버거가 기억하는 낡은 한장의 사진들처럼, 내 자신의 흔하고 낡아빠진 이야기라도 기록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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