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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1. 09:00 - 독거노인

<The Long Day Wanes : 말레이 삼부작>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말레시아는 영국으로부터 막 독립을 쟁취하려는 시기다. 말레이에 머물면서 말레이 식민지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국가를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려고 노력하는 빅터크랩이 주인공이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민중이라면 크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느끼는 우호적인 감정에 이중적 모순이 존재함을 느낄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국가에 대해서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느끼는 크랩의 감정이 과연 정당한가 아니면 온전한 감정인가? 그가 식민지 지배 민족으로써 오히려 자만심에 찬 오판이 아닐까?


크랩 자신을 들여다보면 컴플렉스에 가득 찬 인물이다. 과거의 아픈 추억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오히려 현실적 위안에 더 안주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는 오히려 냉정하게 보일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식민지 권력이 주는 안락함을 결코 벗어나지 않은채 그 속에서 하층민과 영국이 끌어들인 이주민과 그들 중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족간의 갈등 속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오는 행운에 몸을 맡겨 살아남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행운이 영원하지는 않았다는게 그의 운명이지만.


크랩의 모습은 저물어가는 영국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할 수 없어서 헐떡이면서 아직은 숨을 쉬기 때문에 말레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커다란 그림자를 가진 모습. 


이 혼돈의 말레이 반도에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한다. 인도 이주자로서 중간 관리자 지위에 있는 나비 아담스. 그는 끝없는 갈증에 시달린다. 그의 갈증은 커다란 맥주병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말레이 반도 더위를 잠재우기 위해서 끝없이 갈구한다. 

또 다른 컴플렉스를 가진 로즈마리는 백인과 아시아의 혼혈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동양과 서양이 혼재하는 가운데 있지만 그녀의 염원은 영국에 가 있다. 그래서 결코 아시아인들과 섞일 수 없는, 영원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방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돈다. 이들 주위에는 말레이 토착민과 지배층인 영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부초 같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우리들 눈으로 본 역사속 민족 배반자들 같지만, 말레이에는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는 모두가 섞여 있는 혼합과 혼돈속의 질서라는 쪽이 맞을 것이다. 


말레이 안에는 원주민들이 도끼를 들고 언제든지 그 도끼를 휘두를 수 있고 숲속에는 붉은 혁명을 노리는 공산혁명 분자들이 물불을 안가리고 총구를 휘두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들은 말레이 운명이 어떻게 되든 그들만의 장사를 벌이고 돈을 모으려는 악착같은 화교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문제와 다양한 색깔들이 혼재해 있고, 종교적 가치는 확고한 나라 말레이. 그 속에 타락하고 물욕에 사로잡힌 술탄이 있다. 단식 기간이지만 파티를 열고 자동차를 수집하며 여인들을 탐내는 술탄. 


이런 모든 것들이 혼재해 있는 곳에서 크랩이 구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말레이가 독립하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길 바라면서 그들을 응원하고 자신은 영국으로 돌아감으로써 그의 임무 혹은 의무는 완료 되는 거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진정 떠날 수 없는 아시아의 정글 속 깊은 곳에 남겨지는 것이 그의 마지막 완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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