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5. 3. 14. 09:00 - 독거노인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해서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상으로 올라간다. 사랑의 지고지순함은 지옥이나 지상의 어떤 가치도 대신할 수 없으며 오직 천상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고 발견할 수 있다는 듯이 그의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하지만 저자는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무신론자로서 천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먼저 살펴본다. 지상으로부터의 속박을 걷어내고 대지에 속박되어야만 했던 인간의 한계를 뚫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 그것이 그의 탐구 대상이다. 인류의 끝없는 노력으로 인해서 기구를 통해서 그 한계를 벗어난 사람들. 그들은 최초로 하늘을 탐색할 권한을 얻는 대신에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숙명은 그대로 껴 안고 있었다. 신이 존재하던 공간을 침투한 인간은 그곳에서 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으며, 신은 그자리에서 추방 당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힘이 없다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으며 광할하고 자유를 얻고 지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대신에 그 순간이 사라지면 어느새 지상에 내장을 들어내거나 다리뼈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추락을 경험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얻은 그들의 자유를 기록에 남기고자 했으며, 나다르는 항공사진의 이미지를 개척한 최초의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지상의 속박을 벗어났다 돌아온 그들을 지상의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우리의 기억속에서만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지상의 사랑은 영원한 것일까? 아니 지상의 사랑은 최소한 지고지순한 일면을 유지해 줄 수 있을까? 지상의 사랑은 지고지순함을 간직한 천상의 사랑과 다른 것인가? 작가가 찾아나선 지상의 사랑은 일순간 덧없음을 알려줄 뿐이다.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에 귀기울이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건만 사랑은 어느 순간 떠나고 텅빈 공허함만이 자리를 잡는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없다. 사랑의 시작과 끝만이 존재할 뿐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는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의 시간이 한정된 만큼이나 사랑의 시간도 짧게 느껴질 뿐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탐색하는 곳은 지옥이다. 우리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지옥이 아니라, 현실속에 존재하는 지옥이 아닌 자신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그리고 저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나고 남은 자리, 빈공간은 그저 채울 수 없는 고통의 쓴맛이 대신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는 고통의 창을 들고 누군가를 찌르고 싶어진다. 그 창은 한쪽으로만 날이 선 창이 아니다. 타인을 찌르는 쾌감으로 자신에게 위안을 줄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창의 반대편은 자신의 심장을 짖뭉개는 또 다른 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과 공허함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일 뿐이다. 자신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여 그 고통으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통속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무간 지옥에 빠져든 것이다. 누구의 위안도 결코 이 지옥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은 지상의 천국이지만, 그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 보내야하는 순간 이후는 지옥의 열도속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Y 책상  (2) 2015.03.18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0) 2015.03.17
<학문의 제국주의>  (1) 2015.03.09
<조선의 노비>  (0) 2015.02.21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0) 2015.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