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5. 3. 23. 09:00 - 독거노인

<벚꽃동산>


체호프의 희곡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인물의 희극화와 리얼리즘에 기반한 일상적인 사실들의 묘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희극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일상적인 사건들의 사실적인 묘사가 만들어내는 어긋난 일상의 대화들이 초현실성이 느껴지게 만든다.  


러시아의 농노들이 해방되고 새로운 시대가 막 움트려 하는 싯점을 배경으로 하는 희곡이다. 인간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다. 거대한 조류가 방향을 바꾸려하거나 아니면 방향을 바꾸었을 때 그저 어리둥절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그 흐름속에서 여전히 과거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마 농노해방이 이루어지고 러시아가 상업주의로 변하고 있을때까지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무지한 귀족들은 서서히 몰락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몰락의 단적인 면들이 그들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동안 농노들의 희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들 수중에 떨어지는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타성에 젖어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벚꽃 동산은 봄이 되면 아름다움으로 수를 놓지만 일순간의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긴 겨울을 견디고 화려하게 피어오른 벚꽃은 일순 만발하며 세상을 황홀경에 몰아 넣지만 그 황홀경은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라네프스까야는 과거의 화려함에 뭍혀서 벚꽃이 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저 아름다움만을 찬미한다. 결국 변하는 세상속에서 비천한 농노출신의 빠히한이 벚꽃동산을 사들인다. 한때 그의 조상은 라네프스까야 집안을 위해서 일하던 농노출신이지만 이제는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조언을 하고 결국 벚꽃동산을 사들인다. 결국 돈앞에서는 계급차이까지 소멸하고 인간관계마저 희미해지는 것이다. 상업주의는 새로운 시대의 표본으로 돈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쓸쓸히 퇴장하는 자매의 뒤에 남은 벚꽃동산은 그 동산을 사들인 빠히한에 의해서 모두 잘려나가고 새롭게 등장하는 부르조아들을 위한 별장으로 바뀌게 운명이다. 그 화려함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산을 팔고 떠나는 그들은 어디로 갔으며 어느 조류를 만날까? 그들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들의 기억속에는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품었던 벚꽃동산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oner>  (0) 2015.04.09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0) 2015.03.30
DIY 책상  (2) 2015.03.18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0) 2015.03.17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0) 201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