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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9. 09:00 - 독거노인

<Stoner>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면, 그저 평범하게 아무도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타인에게 들려 줄 많은 이야기들 중 상당수는 역사에 기억되지도 그 이야기를 듣는 이에게 기억되지도 않을 사소한 이야기들과 사건들로 가득찰 것이다.


스토너의 인생은 결코 누군가가 기억하거나 역사에 흔적을 남길만큼의 성공적인 삶은 아니었다. 아니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들 인간이 과연 이 조그만한 행성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 타인들에게 명성을 날리고 이해를 얻는 것이 과연 성공이라는 단어와 연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고 그가 맞이할 죽음을 숭고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을, 이 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생을 살아낸 한 인간의 경이로움과 숭고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너의 삶은 끝없는 탐구와 열정적 이해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으로써 하나의 의지를 관철시킨 훌륭한 삶일 것이다. 저자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스토너는 결코 불행하거나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학문을 끝까지 지키고 사수했으며 그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스토너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젊은 시절 한 순간에 반해서 결혼한 여자가 스토너 부인으로써 살아 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스토너는 자신이 구축한 굳건한 철옹성을 가지고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써 살아 남았지만, 아내 이디스는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갈 수 없는 벽에 부딪친 그녀로써는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으로 세상을 이해할 것인가라는 깊은 숙제가 남는다. 스토너의 손에 이끌려 가장이라는 새로운 세상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발견하기 보다는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스토너를 향해서 절규 아닌 절규를 보내지만 그것의 형식은 곧 전쟁이다. 가정내에서 보이지 않는 절규를 외치며 살아남고자 하는 이디의 절망감을 스토너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가 죽음의 순간에 다가감으로써 그들 사이에 선언된 휴전은 영원히 종식되고 진실로 이디를 이해하는 순간이 오지만 결코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스토너가 만든 철옹성에 초대된 손님은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의 여제자는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 보려 했으며 그들은 그렇게 하나인 듯이 세상을 이해한 것이다. 스토너가 캐서린과의 사랑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에서 시작된 것이고 결국 그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고 서로 인정했을 때, 실제 세상은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며 그들의 사랑을 메몰차게 갈라 놓는다. 스토너와 캐서린은 자신들이 이해하던 세상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결국 그들만이 만들었던 철옹성에서 한발자국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스토너가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철옹성은 세상으로부터 결코 격리될 수도 세상으로부터 유린된 지역에서 모든 것을 막아낼 수도 없는 한낱 모래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상이란 그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질수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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