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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9. 09:00 - 독거노인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여행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자신이 여행했던 곳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이 있는 여행지를 누군가가 방문하고 자신의 소회를 글로 남겼다면, 혹은 영상을 남긴다면 이를 정면으로 대면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히 자신이 아니 누군가가 그곳을 공유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자신만이 알고 있던 기억속의 공간이 타인의 기억과 감정으로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은 또 다른 설래임이 존재하기도 한다. 타인이 경험한 공간이 자신이 경험과 공간과 겹쳐지면서 낯선 느낌이 어느새 따스한 동의의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공유의 설래임과 두려움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장소, 어느 공간이나 시간을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공간에 누적된 시간이 만들어낸 의미를 짧은 시간동안 머무는 여행자가 읽어 내기 위해서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암호화된 코드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속에 들어가고 그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자신의 내면 속으로 흘러 들어올 때 그 여행자가 가지는 동질감과 이해는 어느 순간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며 그 공간은 자신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가지지 못한 채 그저 흘러들어왔던 곳으로부터 다시 다른 곳으로 흘러내려가 버리고 만다. 밀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순간 바닷가에 남아 있는 모래위의 흔적들은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한 여행지의 표면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여행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고 싶어하는 공간 속으로, 자신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공간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런 여행이 어느 순간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그가 속하는 공간이 가지는 시간의 의미들이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여행자와 손을 마주잡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의미의 공간이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는 "ZONE"이라는 명명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 어느 순간 어느 시간에도 전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초고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초고속이라는 의미는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는 사이버 공간으로 압축되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유목민의 기질은 응축된 공간속에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어느 순간 어느 곳으로 자신만의 "ZONE"을 찾아서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자신이 속하는 공간, 자신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그리고 그 공간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영원히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는 그 순간의 희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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