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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7. 09:00 - 독거노인

<음식의 제국>


인류 초기의 원시시대부터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까지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재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가 존재했는데 왜 인류는 곡식류를 주식사 대상으로 삼게 되었을까? 이는 재배시 투입대비 산출량의 비율이 타작물에 비해서 효율성이 월등이 좋다는 점, 구근식물에 비해서 저장과 운송이 용이하다는 점을 들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초창기에는 빵과 같이 연료소비가 심한 음식보다는 포드리지(죽)과 같이 만들기 쉽고 덜 소모적인 음식이 선호되었다. 밀 재배지에서는 밀가루를 얻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투입되는 비효율적인 고되고 지리한 작업과정이 수반될 수 밖에 없었다. 음식이 풍부하지 않았던 고대 국가에서는 국가의 권력을 가진자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써 주방의 인원과 크기, 음식 준비하는 과정, 재료의 선택등에 반영되도록 하였다. 국가 권력을 가진이들은 이러한 계층적 권력 구조는 우주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며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우주의 섭리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결국 귀족, 왕족과 같은 계급의 부유한 음식 문화가 현재 일반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 문화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반 인민들이나 가난한 자들은 항상 궁핍에 시달렸고 소비할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음식 문화에 기여할 여지가 없었다.


고대 권력자들이 설파하던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음식 이데올러지는 종교적 변화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인도에서 등장한 제의적 도살에 반대하는 종교(힌두교, 불교)는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도록 음식문화를 변화 시켰다. 중세 무슬림 음식은 지중해, 터키, 인도 등지의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나갔으며 제국의 풍요와 함께 음식 종류와 질의 급격한 향상을 보여준다. 


유목민이 정착민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준 것은 징기스칸 제국이 번성하는 동안만이었으며 그 이후로는 역사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기독교 초기는 절제된 검소한 음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기독교식 절제된 음식 문화는 이슬람과의 접촉, 신세계의 발견으로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음식문화 수용은 더디고 느리기만 했다. 발견되어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음식문화가 유럽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 등의 음식문화도 같이 유입된다.


17세기 중반부터 유럽 식문화는 극적인 변화를 겪게된다. 모던 식문화(프랑스 식문화의 발전)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으며 기존 체질론이나 우주적 조화를 강조하던 음식문화 등을 거부한다. 기독교의 영향하에 있던 수행자 식문화를 포기하고 신성에게 다가가는 것은 먹는 식문화와 관계 없을 선언한다. 이런 식문화는 고기를 기본으로 해서 육류적 풍미를 강조하는 소스의 발달을 촉진한다. 물론 검소한 카톨릭 음식문화로 돌아가야한다는 반작용도 있었다. 이런 음식문화 흐름은 공화주의, 자유주의가 발달함으로써 음식은 계급에 맞게 배분되고 소비되어야 한다는 계급론적 이데올러지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19세기말, 20세기초는 과학과 식품학, 음식학이 발전함에 따라 정치, 경제적 이데올러지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 현대 식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중산층 식문화가 등장하는 시기다. 기존에 꾸준히 살아 남은 체질론에서 벗어나 국력은 식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이론이 등장한다. 영국 해군의 경우 음식의 질이 향상됨으로써 급격한 해군력의 증감을 불러왔으며 이로써 영국이 바다를 제패하게되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서구화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서구화란 개념에 음식문화도 서구화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대두되면서 식문화도 자국적 식문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병존했다. 이 시기에 상류층의 식문화는 17세기부터 발전한 프랑스 요리가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중산층은 공산품으로 가공된 요리재료와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들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과거에 비해 풍족한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고 빵과 고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대두되는 자국의 음식이라는 말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국가란 개념은 100~200년 사이에 형성된 개념이고 음식문화는 지속적으로 지역적, 계급, 계층적 구분을 가지는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결국 국가가 강조하는 개념안에 존재하는 모순이 어떤 식으로든 표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는 혼합과 혼종의 음식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으며 지역적, 계층성을 가진 음식 이데올러지는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또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 음식이 건강식이며 맛있는 음식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음식에 있어서 가장 풍요로운 세대를 살고 있고, 음식을 준비해야할 때 필요한 노동과 시간을 아끼며 아주 적은 댓가로 커다란 열량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산업화와 도시화의 이면에는 분명 우리들이 낭비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와 메몰되는 쓰레기, 오염물질들이 우리의 시야로부터 가려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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