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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3. 11:06 - 독거노인

<백석의 맛>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꽂꽂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백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를 거의 읽지 않는 나의 무지 탓이기도 하지만 백석이 북한에 체류한 관계로 국내 도서로 소개된 것이 늦기도 했다는 변명을 해 본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단순히 음식을 소비한다. 그 단순한 소비에서 시작된, 인간이 존재한 태초 이래 수 없이 되풀이된 소비의 행위가 수많큼 음식에는 그 자체의 의미와 복잡한 계층적, 층위적 변이가 존재한다. 현대의 음식은 그 수많은 역사가 축적되어 이어져 온 의미가 더 확장되고 발전된 형태로 존재한다. 현대 사람이 소비하는 음식에는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부에 따라서 층위적인 양태를 보이고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 혹은 가정에 따라서 음식에 대한 이데올러지적 수용적 차이에 따른 변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의미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서양이 가지는 미각에 대한 고전적 해석-미각은 가장 열등한 감각-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해석을 부정하면서 동양적인 미각 의미가 가지는 총체적 해석을 시도한다. 백석의 시는 시공감이 총체적으로 펼쳐지며 그 의미를 단순히 시각, 미각, 공감각으로 나누어서 해석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해석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백석 시의 음식에 대한 이미지가 과연 그렇게 오감적 해석에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저자는 오감이 서양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열등한 의미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기존에 제시되고 있는 민족적, 향토적 해석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이미지가 존재하고 시작해야 될 곳이 그런 지역적, 향토적 의미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조선에는 근대라는 의미가 강제적으로 이식되는 과정에 있었고, 백석과 같은 앨리트들에게는 강제된 근대화에 의한 지역적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을 때 가지는 비애감이 있지 않았을까. 분명 음식은 근대에 이르기 전까지 지역적 특성이 강한 것이었다. 특히,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경계의 의미가 단순히 지리적 한계에 의해서 더 명확히 제시되던 시절을 거쳐서 강제된 의미의 민족주의가 이식되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해 본다.


근대로의 강제는 단순히 조선에만 존재하던 현상이 아니었고 일본도 서구 문물 도입으로 인한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오래된 것, 전통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정의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로의 이행을 촉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계층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이행 과정은 기실 일본 본토에도 존재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구시대적 유물로써 부정되고 새롭게 서구적 신식 문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에 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에 쌀을 주식으로 생각하던 아시아권 국가에 서구적 음식 습관을 강요된 것은 어찌보면 그런 맥락과 일치하며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포기하도록 주입되었던 것이다.


강요된 근대와 식문화의 변화는 생활공간 전체, 나아가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지역적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백석의 시는 토착적 언어를 사용하여 백석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든 일반 인민들이 사랑하던 음식을 시공감각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석의 시는 일제에 저항적 민족주의적 시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더 근본적인 지역적이고 자신의 삶 근본으로 돌아가는 인본주의적 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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