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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1. 09:00 - 독거노인

<청년, 난민 되다>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이야기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살면서 의식주에서 당연한 권리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이미 경제적 요소가 가장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면서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필수재이기 때문에 그 속에, 그 밑바닥 기저에 있는 이데올러지적 의미 작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경제적 가치에 입각해서 피상적인 일상이 되기 쉬운 부분이다.


대한민국 서울은 이미 전세계에서 물가 비싼 도시로 등록 되었고, 경제적 소외계층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생계적 수단과 기회를 저버릴 수 없는 공간이며, 그 공간에 머물기 위해서는 비싼 댓가를 치뤄야만 하는 공간이다. 그 경제적 약자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미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경제적 쇠퇴기에 들어서고 있는 공간으로써 책이 주목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청년들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이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가 밟았던 안정적인 경제적 성장의 길을 밟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길에 들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마저도 험난한다. 부모 세대는 경제적 성장과 함께 모든 것이 성장하는 단계였고 그들에게는 수많은 기회와 경제적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 성장이 다 끝나고 남은 도시는 새롭게 그 도시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그 혜택을 쉽게 주지는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그 혜택을 나눌 여분의 가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비단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고도의 압축 성장을 자랑하던 아시아의 용들도 다른 외형을 보이고 있지만 속내는 결국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서구의 장기간에 걸쳐서 형성된 경제구조가 전후 단 몇십년안에 급격하게 수용되고 변질되어 정착되면서 그 압축성장 속에서 혜택을 받은 세대들은 부동산으로 상당한 이득을 보았고 그들의 노후 자산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성장의 시대가 거쳐가고 남은 뒷 세대는 무엇을 물려 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점이 남는다. 그들은 직장 생활의 봉급으로는 몇십년을 저축해도 살 수 없이 올라버린 주택 가격과 단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점점 더 외곽으로만 밀려나야 하는 암울한 일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일본 같은 경우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장기 대출을 통해서 퇴직때까지 갚아가며 결국 자신의 손에 집을 가지고 은퇴할 수 있는 기성 세대와는 다르게 장기불황의 결과 고용 불안정과 임시 근로직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이들이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집이란 사치스러운 단어일지 모른다. 그나마 근근히 연명하는 이들에게는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지만 그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난 프리타족이나 니트족들은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다양한 공간을 전전해야만 한다. 그들에게는 편안한 꿈을 꿀 수 있는 잠자리마저 사치스러운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경계의 자리에서 점점 더 밀려나고 있는 그들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가. 아직은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이제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 경제 상황에서 그들이 더 깊은 나락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받쳐줄 수 있는 발판이 정말로 있는가에는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 사회적 공동체로서 그들을 보듬어 안을려는 시도들이 있다. 정말로 그런 시도들 전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정부가 나서서 그동안 기성세대 그리고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모두가 더 넓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공공주택 정책을 추진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과연 이런 시도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중산층은 가진 것이 집 밖에 없는 곳에서 그런 유의미한 행동들이 진정 진행될 수 있을까.


이제 노년이 되어가는 나도 땅에서 조금더 가까운 곳에 안주하고 싶다는 욕망을 한다. 누군가는 그저 편안히 몸을 뉘일 곳을 원하지만 나는 더 많은 욕심을 가진다. 그런 욕심이 소원해 보이는 것은 이미 이런 불합리한 선택들에 나 자신도 깊이 들어가 있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길을 이미 벗어난 기성세데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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