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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6. 09:00 - 독거노인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이찬갑이라는 일제식민지 시절을 살았던 한 재야 지식인의 삶을 그가 남긴 신문 스크랩과 메모를 통해서 재구성한 책이다. 미시사적 연구의 한 성과로서 평민으로써 살아가기를 자청한 이찬갑이라는 인물을 추척해 본다. 그에 대한 기록들은 많지 않지만 그가 남긴 신문 스크랩을 바탕으로 작가의 시대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료들을 근거로 비통함에 젖어 한 시절을 살아야했던 무명의 지식인적 삶을 재구성해보고 그 바탕에서 일제 시대에 지식인이라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비통함과 절망감 그리고 그 삶에 베어드는 애잔함을 기술하고 있다. 


이찬갑의 종증조부 되는 이승훈이 오산학교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이찬갑은 농촌공동체를 결성하여 식민지 지배하에서 자립적인 이상향 공동체를 추구한다. 


이찬갑은 스스로 일본의 빈민가와 중국 상해의 빈민가를 체험하면서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인민이 내몰리게 되는 절박한 현실을 인식했으며, 농촌공동체 건설에 있어서 덴마크 그룬트비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이 아니고는 그 민족을 일깨울 수 없다." 말에 영감을 얻어 인민들에게 역사 공부를 강조하고 모국어 사랑을 끊임 없이 강조했다. 이찬갑이 강조한 농촌공동체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로 인하여 근대화를 강요 당하고 농촌이 붕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시 문명과 자본주의 체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대안으로 농촌공동체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적 폐해는 역사와 그나라 말로써 정신을 정화하며 이를 기반으로하는 깨닮음의 실천과정이다. 


이찬갑은 평생 평민으로 살면서 오로지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종교인이지만 결코 어느 특정 교회에 소속되기 보다는 삶속에서 공부하고 신에게 예배하는 사람을 산다. 이는 일본의 야나이하라의 영향으로 무교회 운동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기독교들로부터 무교회 운동에 대해 많은 비난 받는다. 일본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종교적 사상적 의심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선의 교회와 신자들 특히, 서북지역의 교회와 신자들은 이미 교회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기복신앙적 요소들이 깊이 물들어서 타락의 길로 접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찬갑의 눈에 이런 교파적, 기복신앙적 요소들은 신앙인으로서 결코 용서될 수없는 오점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제말기가 되자 조선기독교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하면서 변절하게 된다. 조선 교회의 큰 거두인 윤치호, 신흥우 같은 기독교 거물들이 동반 변절은 이찬갑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군사기지화 및 탄압이 강화되면서 오산학교에 관여했던 많이 이들이 떠나게 된다.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본은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말과 역사를 강조하던 이찬갑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고 점점 더해지는 식민지 폭정의 압제에 억눌리는 울분을 토로할 수 없는 내면의 침묵을 강요받는 것이기도 했다.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는 신사참배에 대해서 외국인 신분들에게도 강요되었고 결국 이 문제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떠나게 된다. 이찬갑은 서양인 신부들의 행태(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장이었고, 인종적 편견에 젖어 있는 인물들로 생각했다)들에 대해서 결코 만족할 수 없었지만, 일본의 신사참배 문제로 이 나라를 떠나게 되는 이들에 대해서도 동감할 수 없었다. 이는 조선에 있는 많은 사립학교들이 일제의 통치권력하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남북분단을 겪으면서 이찬갑은 월남하여 남쪽에 풀무학교를 설립하고 공동체 이상향을 계속 추구한다. 결코 평민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도 않은 진정한 삶의 실천인으로써, 종교인으로써 살기를 죽을때까지 염원한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것처럼 역사라는 사실 위에 흔들리는 담론을 올려놓는 과정은 위태롭게만 보일 수도 혹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도 있는 과정이다. 역사란 어느 일순간 정지되어 버린 정적인 시공간이 아니라 후대에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이해되기를 기다리는 혼돈의 정렬되지 않은 존재들일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잊혀지는것 같지만 남아 있는것들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더 분명한 의미를 띄기도 한다. 그런 탈색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건 순전히 역사가의 몫이다. 역사가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서 자신만의 이데올러지로 분명히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세우는 과정을 거쳐야할 것이다. 어느것이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떻게 인식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저자는 분명 한 개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이찬갑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생각들을 다시금 꺼내어보고 되집어 보고 알수 없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의 공백은 자신만의 추리로 새롭게 메워가는 작업을 한 결과가 이책이다. 이찬갑의 인물을 빌려서 그 가면뒤에서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일제시대를 거쳐온 환영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를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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