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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6. 09:00 - 독거노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요>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그게 안되면 존경해주길. 그게 안되면 두려워해주길. 그게 안되면 미워하고 경멸해주길.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에게 어떤 감정이라도 불러일으키길 원한다. 우리의 영혼은 진공상태를 혐오한다. 무엇에라도 접촉하길 갈망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특히 남들과 남다른 특징을 보이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섞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외롭고 더 깊이 자신에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엘사라는 꼬마 아이가 남들보다 더 기별난 것은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 밖에 없다. 더 똑똑하다는 것은 그 나이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도 있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특이한 아이를 인정하고 남들과 다르게 키울 수 있는 부모는 행운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 아이가 만들어내는 골치 아픈 일들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아마 한국의 부모였다면 자기 자식이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다른 애들과 섞이기 못하는 것에 안달하며 한국형 천재를 키우기 위해서 강남 학원가를 전전했을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의 엘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할머니가 있다. 무조건적으로 엘사편이면서 엘사의 보호막이 되어 주는 할머니. 특이하지만 누구나 어릴적 기억 속에 따스함으로 남아 있는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따스함을 주는 할머니의 존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할머니들만의 공통된 능력인 것 같다. 아마 자신이 세상에서 아무리 바보 같은 존재일지라도 할머니들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손자나 손녀로 보일 것이다. 그것을 어릴적에는 느끼기 힘들지만.

소설은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속의 세상과 현실의 속에 존재하는 세상을 씨실과 낫실처럼 엮어내면서 할머니가 남긴 보물 찾기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소녀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던 할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소녀가 홀로 성장을 하기 위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유언과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그 소통에는 결국 모든 이들은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와 소통을 원하며 그 소통을 연결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나름데로의 방법들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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