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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1. 09:00 - 독거노인

<Paradise of the blind>


눈보라와 추위에 갇혀 버린 Hang의 몸과 마음은 타국에서 지쳐 있어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진 듯한 그녀에게 외삼촌 chinh으로부터 아프다는 연락이 온다. 이 연락은 그녀의 지친 마음 속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과거 속으로 끌고 내려간다.


유교적 전통과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어머니 Que는 공산당원이 된 남동생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유교적 전통에 묶여 있을 뿐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조상과 혈육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정작 이런 이데올러지를 비난하고 무시하던 chinh은 그녀의 도움으로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의 곤궁을 외면하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Que가 외삼촌 자식들, 남성 혈육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 커질 수록 Hang은 어머니로부터 더 큰 사랑을 갈구한다. 정작 그녀의 사랑을 채워준 것은 생존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온 고모 Tam이다.


고모 Tam은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Hang에게 모든 것을 투영한다. 죽은 남동생에 대한 그리움, 공산주의 하에서 해체되어 버린 그녀의 삶, 삶에 대한 의지와 절박감, 잃어 버린 자신의 paradise가 Hang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받친다.


Hang에게 애정을 주는 두 여인의 자신들의 영혼과 살을 깎아서 그녀들의 애정의 대상인 조카들에게 먹인다. 자신들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소멸되는 그날까지의 숙명인 것처럼. 베트남의 시골 지역에서 음식은 돈과 같은 인간적 표현 -사랑, 존경, 증오와 같은 인간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인의 애정의 물질적 현신은 음식과 돈이다. 달콤한 단과자들과 제사 음식, 길거리 음식, 열대 과일들. 이 모든 것이 여인들이 자신의 사랑을 투영하는 과정에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 빈곤함을 들어내는 또 다른 이미지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긴 역사 속에서 존재한 권위적 남성 중심의 유교주의 굴레 안에 갇힌 베트남 여성의 고통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생존의 굴레 속에서 주인공 Hang이 결국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나아가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베트남이 중국을 따라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 오래전 베트남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베트남이 어디서 자원(재원)이 있어서 국가를 꾸려가는지, 인민들이 생존하는지 마술과 같은 효과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베트남의 길거리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보다는 삶의 활기가 주는 생동감이 더 활기차게 느껴졌다. 거리 곳곳에 보이던 길거리 노점상들과 생존에 허덕이는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기에는 시장에 넘쳐나는 다양한 색깔의 물건들이 오히려 눈을 사로 잡던 곳이었다.


어쩌면 베트남이 나에게 보여준 활력과 강인함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이겨내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든 그들의 자존심도, 공산주의 이데올러지에 사로 잡혀서 더 이상 우려 낼 수 없는 찻잎을 담근 찻잔을 앞에 두고 손님을 맞이해야만 하는 곤궁함을 들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존심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결코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남성주의, 유교주의적 권위의 전통이 아니라 그 자존심을 떠 받치기 위해서 희생되었던 여성들의 숨은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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