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6. 09:13 - 독거노인

<백범일지>


전에 읽던 역사책 저자가 <백범일지>를 언급하면서 19세기말과 20세기초를 살다가 백범의 일기는 최고의 미시사 연구 교체라는 말에 당장 읽어보지 않을수 없었다. 한 개인의 역사를 낱낱히 그것도 격동기를 겪는 인간의 모습과 그 상황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역사책이 아닌가.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정말로 백범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점이다. 그가 추앙받는 인물로서의 영웅적인 면모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로서 서기 위해서 자신의 과와실을 가감없이 기술하고 그것을 보여줬다는것 자체에 커다란 점수를 주고 싶다.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하고 그것을 감추고 싶어하는데 자신의 괘적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것또한 자신이 한 일이기에 그대로 들어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 아마 아버지의 위치에서 그것을 다 들어낸다는 것은 일반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몇배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국내에서 활동하던 시기와 상해 임정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구분되어서 기술되어 있는데, 상해에 머물던 시절은 일본의 중국 침략과 맞물려서 힘겹게 임점이 유지되던 시절이고 거기에는 다른 어떤 기술보다 백범 자신의 독립에 대한 열의와 임정의 춧불같은 위기 상태들을 위주로 기술되어 있어서 초반부에 기술되어 있는 조선 인민들의 삶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들은 많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흥미는 많이 떨어지는 부분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고 책의 백미는 조선말기에 태어난 백범의 어린 시절을 기술한 부분이다. 양반이지만 몰락해서 상놈으로 살아가야하는 백범의 집안과 지금의 북한쪽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가난하지만 자식이 공부를 하겠다하여 훈장을 불러다 교육시키는 장면은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과 희생정신이 잘 보인다. 그리고 훈장질을 하던 훈장들의 먹고사는 문제라던가, 백범 집안의 대소사를 통해서 보여지는 일반 인민들의 고단한 삶들을 잘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백범이 글을 배워 조선말에 치러지는 마지막 과거 - 백범의 기술에는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과거는 한번 더 있었다고 한다 -를 치르는 장면은 그 부폐한 조선의 행정능력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이미 체제자체가 무너지고 기강이 없어진 나라의 모습을 반증하는 장면일 것이다.

백범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일상적인 삶의 모습 뿐만 아니라 유랑시절에 삼남을 돌면서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농들의 착취와 행패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주계급의 무능과 오만이 잘 들어나는 장면이다. 양반이라는 이름을 벼슬 삼아서 아랫사람들을 홀대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허세적 권위. 이런 양반들의 그늘에 기생하는 사랑방 손님들의 모습은 시대적 말기 모습과 맞물려서 서서히 기울고 있던 조선체제의 서글픈 모습으로 보인다.

민족주의자로서 백범 선생을 보기 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삶속에 들어가 시대적 변혁기에 사는 인민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료적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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