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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21. 09:00 - 독거노인

<정령들의 도시 : City of Djinns>


인도의 역사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 델리. 델리에 역사학자 William Dalrymple가 일년동안 거주하기 위해서 도착한다. 그는 델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서 길을 나선 것이다. 


그는 현대 델리를 특징 짓는 깊은 상처 중 하나인 1947년의 인도분할의 의미를 더듬는 것부터 시작한다.  델리에서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엘리트 계급인 무글 토착민들은 펀잡지역으로부터 유입된 피난민들을 그저 돈만 밝히는 인간들이라 경멸한다. 이에 반해 펀자비들은 델리 토착민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한심한 인간들로 치부해 버린다. 올드 델리는 옛영화의 흔적들마저 먼지와 소음속에 묻어버리고 과거의 영화로부터 멀어지며 잊혀지며 점점 더 깊은 고대의 흔적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옛귀족들의 집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으며 이와 함께 그들의 언어인 우르두어도 잊혀지고 있다.


무굴의 옛영화를 자랑하던 올드델리는 1947년의 대혼란으로 인해 비워져버린 고대 유물이 되었으며 그 공간을 불결하고 지저분하며 황폐한 거리로 탈바꿈시켜 버리고 말았다. 화려했던 무굴의 옛건물들이 사라지듯이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도 떠났으며 화려했던 옛추억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화려했던 델리에 영국 제국주의가 남긴 뉴델리의 건물은 과거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재현하거나 조화를 꿈꾸기 보다는 그 웅장함과 거대함에 있어서 전제정권인 나치나 파시즘의 허영심을 닮아 있다.


인도의 Residence가 되기 위해 Fraser가 인도에 도착하여 갠즈스강에서 델리로 가는 육로에는 노상 강도들이 출몰하는 무법천지였다. 그가 델리에 도착하여 받은 인상은 옛영화의 몰락과 쇠락으로 쇠퇴해져가고 있는 마지막 왕조의 영락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과거 무굴 왕국의 영화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버려진 잔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Fraser는 기이함과 해박함, 무모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그와 비슷한 무모함과 용맹성을 가진 Skinner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했는데, Skinner는 혼혈이었다. Skinner는 동인도 회사와 영국을 위해서 세운 무공은 엄청난 거였지만 그가 혼혈이라는 이유로 동인도 회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거부되었다. 또한 그의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그 자식들 또한 인종적 편견에 시달리며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19세기가 되면서 인종적 편견은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인도쪽 사회뿐만 아니라 영국 사회 양쪽 모두에 뿌리 깊이 파고든 것이다. 


인도와 영국 문화의 혼성적 융합을 꿈꾸던 Fraser는 결국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도에서 암살 당한다. 그가 무굴 왕족간의 재산 싸움에서 왕족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결국 그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 당하고 만 것이다. Fraser의 암살 후 인도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그 반란에 대한 보복으로 데리는 피의 복수와 처절한 파괴가 일어난다. 


아랑제브가 떠나 버린 델리는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고목나무처럼 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무굴제국 말기에 델리를 방문했던 Dargah Quli Khan은 우리가 생각하던 고사한 도시 델리가 아니라 생생하며 활기찬 모습을 가진 델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수피들의 외설스러움과 인도 전역에 그 명성을 남긴 창녀(그녀를 품기 위해서 수많은 부자들이 몰락할 정도였다)를 기록하고 있으며 무굴 음악과 시와 음탕함들을 면밀히 기록으로 남겼다. 페르시아 침공으로 1739년의 약탈과 대량학살은 델리의 생명력을 완전히 꺼버린 듯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델리의 생기는 다시 살아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무굴 시대의 델리는 샤자한이 살아 있던 시절이 가장 번성한 도시였으며 그 아들 아랑제브가 자신의 고독과 절제된 삶을 찾아서 떠난 버린 이후 버려진 도시로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샤자한의 아들 아랑제브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변방에 물러나 있었다. 샤자한의 사랑을 받던 아들 다라시코는 강력한 군대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결국 두 부자의 파멸은 자신감에서 시작되었으며 샤자한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딸의 시기와 질투가 섞여 몰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샤자한과 다라시코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으며 무굴 문화와 예술 절정기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아랑제브가 그 뒤를 잇는 왕좌에 오름으로써 무굴의 화려함은 막을 내리게 된다. 


무굴 제국의 흔적이 현대 델리 어느 구석에서 숨쉬고 있다면 아마도 자고새 싸움과 부자지에 대한 전통일 것이다. 무슬림 시대에 다양한 역활을 수행했던 환관들은 힌두교내에서 불가촉 천민보다 더 천한 계급으로 분류되었다. 이런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 인도 사회에 타협과 끊을 수 없는 전통적 역활로서 흡수되어 있다. 


Paradise는 페르시아어의 pairi(주위)와 daeza(벽)이라는 단어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델리에 남아 있는 Shalimar Garden은 그 의미를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델리는 단순히 무굴 시대의 영화를 덮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래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수 많은 역사를 겹겹히 쌓아 놓고 있다. 무굴시대에 건설된 수많은 건물들의 지층에는 그 이전 힌두교에 의해서 건설된 수많은 건물들이 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아래는 힌두교 이전에 건설된 역사 기록 이전의 지층이 남아 있다. 인도의 역사학자가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돈과 시간 그리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 발굴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깊은 역사를 품고 있는 델리에는 그저 먼지 속에 사라져 가고 있는 무굴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거대한 뉴델리를 바라보기 이전에 역사의 숨결이 묻어 있는 지저분하고 메케한 공기를 품은 올드델리는 그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역사 속의 살아 있는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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