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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4. 11:11 - 독거노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자서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릴적 영화로 봤었던 그녀의 작품들이 실제 읽었던 책들의 내용과 겹치면서 혼돈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 장면들만 어렴풋이 남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특별히 그녀의 작품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유명한 추리 소설가 정도로만 남아 있다. 그렇게 흥미 있는 작가가 아니면서 그녀의 자서전은 왜 읽는 것일까. 누군가의 서평을 보고서 느끼는 그녀의 이야기가 굉장히 끌렸다. 유쾌하고 쾌활한 나이든 아줌마의 이미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읽어보니 그녀에 대한 내 편견과 선입견은 유명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과 선입견에 일치한다는 걸 느낀다. 흔히 유명인들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과 허영이라던지 우월감 등이 글 속에 파 묻혀 있을거라 생각은 조금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잘 예견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오히려 그녀 자신에 삶에 대한 변명들이 가득하고 시간이 가져다 준 삶에 대한 성찰과 진지한 의견들이 책의 곳곳에 담겨져 있다.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변화와 삶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체득하게 되는 작가의 삶과 평범한 인간의 지혜들이 잘 녹아 들어 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누구나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잘 해 냄으써 성공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자신도 가곡을 부르고 작곡을 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이 아님을 인정 한다.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 덕분에 시를 쓰고 글을 썼지만, 실제로 그것이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써 그리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될줄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주위의 권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던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냄으로써 결국 책을 내게 되고, 첫번째 남편과의 이혼 이후에 생계 수단으로써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은 꽤 아이러니 하다.


그리스티 여사도 자신의 어릴적 환경이 부유한 이미지를 줄 것 같아서 인지 자신은 결코 부유한 환경에서 철부지로 자랐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자산을 유지하는 정도였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데, 현대적 관점으로 보자면 사설 교육을 받고, 조부로부터 받은 연금 등을 생각한다면 나름 부유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정규 교육 과정이 아닌 개인적인 선생들로부터 교육과 프랑스에서의 체류 등은 일반인이 생각해도 꽤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덕분에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와 명성을 얻은 크리스티 여사는 집 사는 걸 좋아했고, 실제적으로 여러채의 집을 사고 판 덕분에 재미가 쏠쏠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부동산과 재력이라는 걸 느낀다. 분명 크리스티 여사 입장에서야 자신이 살고 싶은 곳들에 집들을 사고 그 집들을 관리하면서 사는게 즐거운 현실이었겠지만, 현대 영국에서 집값이 너무 올라서 고생하는 젊은이들의 이미지와 겹쳐져서 입안이 씁쓸해진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자신이 좋아 하는 장소들을 둘러보고 살고 싶은 집들을 구매할 수 있었던 여력과 두번째 남편을 만나는 계기가 된 중동으로의 여행이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타고 힘들게 닿은 중동의 유적지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인연들. 내 인생에서 가장 소망하는 부분이기도 한 세상 어느 다른 곳에서의 삶이 꾸준히 이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