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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5. 09:00 - 독거노인

카메라



어느 순간 머릿 속에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 오르면서 욕구, 욕망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멍한 순간 속에서 불현듯 찾아 온 불청객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쉬 사그라들지 않고 마음이 급박해지기 시작했다. 순산간에 흥분감과 불안감, 초조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 이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버린 필름 카메라의 욕구가 다시 반복된것일까 의문을 품으며 물건을 집어들 것이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현실의 문제점들은 애써 외면해 버리고 나면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뿐이다.


출근길의 햇살


내가 파는 것들은 손해를 보고, 내가 사는 것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게 인터넷 장터의 속성이었다.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닐까 내심 불안하기까지 하지만 상대방도 초조하기는 마찮가지일 것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하는 만큼 거래가 끝나는 싯점까지 서로가 불신과 불안을 기반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멈출 수 없으면서 손이 멈추지 않는 것은 판매자가 올린 글에 붙은 수식어에 이미 마음을 뺏기 상태였기 때문이다. 으례 따라 붙는 수식어지만 내 안의 욕구가 이를 붙들고 놓지를 못한 것이다. 끈덕지게 따라 붙는 욕구는 결국 불안과 희망을 교차하는 끝 없는 번뇌다.



이번에 나의 운이 좋았나 보다. 나의 불안감과는 달리 거래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 간다. 물건이 손에 들어온 순간 그동안 왜 그렇게 불안에 떨었을까, 내가 왜 그렇게 상대방을 믿지 못했는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약간의 후회와 죄책감의 찌꺼기다. 단지 여행갈 때나 사용할지 모를 카메라, 어느 순간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린 나의 무감각함.



카메라는 생각보다 컸다. 그냥 똑딱이 카메라보다 조금 큰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그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온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게다가 너무 많은 기능과 너무 많은 버튼들은 보는 순간 주눅들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카메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모시고 섬겨야할 것만 같은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잘 찍히는 카메라를 원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핸드폰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지금, 그 편리함과 성능을 버리고 카메라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보상을 원하는 것이고, 그 보상을 위해서는 카메라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위용이 필요한 것이다.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아닌 부수적이고 잡다한 욕망의 대상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이런 무수히 많은 것들이 끝없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사는 동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욕구와 욕망들. 그 욕구와 욕망들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어가며 나의 손길을 원한다. 손에 쥐어지는 것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그 순간, 그 시간에 나를 지배하는 욕구와 욕망들의 결과물이다. 카메라가 지금 이 순간 그 역활을 하고 있으니, 이 한 순간은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회사로 가는 길


언젠가는 채워질 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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