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2. 2. 17. 10:44 - 독거노인

<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


중국의 남송시절 항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과거로의 먼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조각들을 잘 꿰 맞춰야 한다. 그런데 이 퍼즐들을 맞추기 시작하면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과거의 먼 시간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글이라는 것이 지식계급이 소유한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기득권층의 소유물에 가까운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관심갖고 그들이 원하는 내용들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것이 타인 혹은 이방인에 의한 기록들이다. 이는 기존에 존재해던 내용과 서로 비교하며 내용들을 검증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참고 문헌이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다. 진위성 여부를 떠나서 그 시대를 아마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본 그리고 풍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중국 문화를 바라봤기 때문에 관념적 세계를 더 중시하고 자아와 대립하는 세계관이 존재-우주와 혼연일체로 파악되는 존재-하지 않는 동양적 세계는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 남송시기의 항주는 수도로서 모습을 갖춰가면서 급격하게 팽창하고 역동적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을 하고 있는곳이었다. 그들은 남방의 물질적 풍요를 그대로 누렸으며, 전통적 생활속에서 새로운 쾌락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소비 수준을 보면 놀랄만한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중국 인국의 급격한 팽창으로 근대로 접어들면서 기아와 빈곤에 시달렸다는 연구-문제는 광할한 중국에서 지역적 특성을 배제하고 전체적, 총괄적으로 그들이 빈곤했다고 이야기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빈곤하고 기아에 시달렸지만 하루 2천칼로리의 양식을 소비했을거라는 추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들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항주에 기거하는 주거 모습은 마치 근대 일본의 쿄토를 연상시키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2층 혹은 그 이상의 가옥에 빽빽하게 밀집된 인구와 주거환경은 항상 화제의 위험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벽돌과 기와로 만들어진 집들은 상류층이나 귀족층만 누릴수 있는 특권에 가까운 주거 환경이었다. 나머지 서민들이나 밑바닥 계층들은 그저 나무와 기둥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주택에서 고도로 밀집된 인구의 포화상태를 견뎌야했던 것이다. 덕분에 불이 나면 순식간에 퍼지고 모든걸 재앙 수준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 시기에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풍습들은 고대의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현재도 동양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종교적 변화와 물질적 풍요속에서 그들만의 축제와 향락이 존재했다-당,송 시대에 남창 혹은 남자아이에 대한 성적관계들은 금지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조차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가사를 탕진했다는 내용이 존재하고 상류층으로 갈수록 결혼을 통한 신분의 통합과 체제유지적 정혼의 모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고대 중국의 다양한 일면들을 책이 담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이야기들을 다 듣고나면 아마 새로운 고대중국의 공간이 형성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