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DNA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생물의 존재 원인이다. 생명체라는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실어나르는 운반체이며 합목적적인 이성적 판단과 행동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움직이는 생명체라는 감정을 가지게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개체로서 가지는 오류다. 오직 유전자만이 그 원인이고 유전자는 단지 존재하고 자손으로 자신의 DNA를 퍼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 어떠한 이유도 원인도 없다. 단지 존재하는 것이 그 유전자의 본질인 것이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는 유전자가 우리 몸안에 모여서 하나의 유전자 운반체를 유지하고 유전자를 번식하기 위해서는 협력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결국 전력적 게임이론을 통해서 유전자들끼리 경쟁할 때 보다는 협력할 때 서로에게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걸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몸이라는 유전자 운반체 속에는 서로의 상생을 위해서 다양한 유전자들이 협력을 통해서 살아가고 유지된다.
자연선택설의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 혹은 의도적인 해석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은 경쟁을 통한 우위의 결정이다. 경쟁을 통해서 살아남는 것이 최고라는 이 생각은 현대의 모든 곳에서 오용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금의 경쟁만을 강요하는 상황은 이런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역사적으로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자연에 적응해서 살아남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부분이 왜곡되어 결국 경쟁을 통해서 우수한 종만 살아남는다는 식의 오용이 문제다.
예전 다큐를 통해서 본 맘모스의 예는 진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맘모스는 아프리카에서부터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시베리아 벌판까지 퍼져 있었다. 어떤 원인이 이 거대한 생명체를 절멸로 이끌었을까. 분명 기후의 급격한 변화나 먹이 혹은 천적의 존재에 의한 멸종은 아닐것이다. 이처럼 진화에도 분명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만약 진화라는 의미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론들이 등장한다면 지금처럼 단백질 덩어리인 DNA에 의해서 우리는 단지 끊임없이 살아서 번식시키는 하나의 기계로 설명됨에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한자중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自然이다. 동양적인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으며, 글자 스스로가 그걸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서양적 철학사고나 종교적 사고에서 나오는 어떤 목적론적 존재가 아니라 순환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단어로서 이보다 동양적 사고를 잘 표현하는게 어디있겠는가. 유전자도 그저 존재하는 존재로서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유전자는 인간이 사고하는 것처럼 어떤 철학적 사고 기반이나 의지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해서 판단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유전자에는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지만 그것들이 실제 현실속에서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보는 발현되지만, 어떤 정보는 그냥 정보로만 남는다. 유전자들이 어떤 상화에서 그렇게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왜 특정환경에 적응하도록 특정정보만 발현되는가. 그리고 다양한 돌연변이들은 왜 출현하는것인가. 유전자 자신이 가졌던 과거의 정보들을 뒤틀어 새롭게 태어나는 돌연변이들은 종의 다양화를 촉진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런것들이 어떤 판단행동을 유도하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 무사고적인 유전자의 선택이라면 앞날을 선택하는 행위는 어디서 오는걸까. 이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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