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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18. 09:00 - 독거노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토니의 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안드리안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역사란 "부족한 문서와 불완전한 기억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 한다. 물론 역사 선생님은 안드리안의 시니컬한 말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만 진부하고 전형적인 말로 그의 말을 부정하려할 뿐이었다. 토니가 기억하는 유년기는 몇개의 특별한 사건들만이 존재한다. 그외는 희미하고 "불완전한 기억"들이 존재하는 시간들일 뿐이다. 


그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자족적이며 자기만족적으로 충만한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완벽한 시간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알츠하이머를 앓지 않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조용히 사그라들기만을 바라며 사는 그에게 불완전한 기억을 메우는 "부족한 문서"의 일부가 나타난다. 과연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토니 자신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며 뒤틀린 역사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소설 속에는 모든 것이 미숙했던 유년기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어가는 듯한 장년기만이 있다. 그러므로 시간상의 공백들에 있을 화려함과 절정들은 생략되어 있다. 토니는 인생의 정점 동안에 유년기부터 간직했던 자기만족적, 자족적인 인생을 보냈다고 이야기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삶은 오래된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평생 타인에게 해나 피해를 주지 않고 그렇다고 타인에게 호혜나 은혜를 베풀지도 받지도 않은 늙은 노부인이 있었다. 그녀가 인생동안 타인과 관계를 맺은 것은 거지에게 파 한뿌리를 적선한게 다였다. 그녀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자 염라대왕도 그녀의 삶을 평가하기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판결은 그녀가 파 한뿌리를 잡고서 벼랑으로부터 올라온다면 천당으로 갈것이고 올라오지 못한다면 결국 지옥으로 갈것이라는 것이다.



토니가 베로니카와 헤어지면서 보낸 편지 한장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파 한단과 같은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평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하나의 삶의 일부일 뿐 타인이 생각하고 평가하는 그의 역사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가혹하고 잔인했을 수도 있는 인생인 것이다. 자신이 미숙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가시 돗힌 시간들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 토니 자신이 그 가시들을 뽑아내고 잘라내며 인생의 긴 시간속에 끌어안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 낸 시간들일 것이다. 아니 그런 기억들은 토니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긴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시간들을 자신 스스로 끌어 안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왜고하던 기억을 지우든 그것은 인생의 일부이고 그 자신의 역사일 것이다. 


과연 불완전한 인간 스스로가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완전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가. 아니 완전한 역사를 원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꾸며내고 포장하는 시간들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안과 초조함,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위들의 결과들. 그 찌꺼기들은 사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받아 들이는 가장 진실된 측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