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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9. 17:06 - 독거노인

인생


예전부터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 제목을 들었었다. 아니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정확히 읽었기 때문에 "허삼관 매혈기"라는 제목을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어디선가 주워들은 제목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이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제목만 기억하는 책의 작가 이름을 기억할리는 만무하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인생"이라는 책을 꼭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보다는 덜 잔인하고 왠지 깊은 여운이 묻어 있을 것 같은 제목이다. 그리고 실제 책을 집어들자마자 다시는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메말랐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감정이 뒤틀려 가는 요즘. 눈에서 눈물이 흔해졌다지만, 이 책은 그 흔한 눈물 대신에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여운이 있다. 그만큼 삶을 살아온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인생"이 전하는 이야기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본다면, 그 시대에 속해 있던 이들 개개인 삶 하나하나가 소설이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푸구이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을 깔고 진정 인간의 삶이 이어지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재산을 가진 자의 풍요가 무슨 의미이며, 밥을 굶는 가난이 주는 역경이 과연 무슨 의미이며, 결국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만드는 인생의 넓이는 어디까지 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헐벗고 태어나 결국은 무명 옷 한벌 걸치고 관으로 들어가는 인생은 비단 옷을 입고 걸치고 화려한 관으로 치장을 하고 묻히는 인생과 다른 것인가.

 

인생이란 여러 역경들이 존재 한다. 푸구이가 겪은 풍지평파는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그를 바라봐야 하지만, 우리 같은 민초들이 겪는 일상은 개울 물 밑에 깔려 있는 자갈들처럼 끊임 없이 현실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아마 푸구이도 매일매일 살아 남기 위해서 식량이 바닥나는 것을 걱정해야 했고, 옷이 떨어져 더 이상 걸칠 수 없는 날을 걱정하며 근근이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걱정들은 일상을 지탱하는 하나의 생존의 근거이지만, 너무나 현실에 밀착되어 있어 그 존재감이 내 생명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인생이 격변의 시기에 출렁일 때마다 우리의 몸둥아리는 조금씩 그리고 어느 순간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된다.

 

나에게는 애정을 쏟을 자식도 없고 나를 아껴주고 이해해 줄 부인도 없지만,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있다. 세상은 모든 것을 버려도 결국은 세상과 절연할 수 없으며 세상 속 어딘가로 이어진 끈을 달고 사는 게 인생이다.

 

어린 시절에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 위화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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