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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8. 09:00 - 독거노인

<근대사회변동과 양반>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양반이라는 신분은 그 형성과정과 해체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한다. 너무 당연시 다루어지는 양반이라는 신분이 어떤 법적 보장된 신분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암묵적 신분이기 때문에 뚜렷한 존립 자체를 설명한다는 것부터가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양반 신분의 해체과정을 추적하는 과정도 모호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논문에서 조선시대를 봉건적 시대로 산정하고 이에 따라 봉건적 신분 해체과정을 양반 신분제 해체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과연 조선시대가 서양의 역사 단계중 봉건적 과정과 동일시해서 봐야하는가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18세기부터 강화된 양반의식, 특히 동성촌락 형성을 계기로 각종 향약과 계를 통해서 결속력을 강화하고 양반의 권위와 권력을 강화해 가는 과정이, 조선후기 물질적 생산성의 향상과 맞물려 신분제의 혼란과 계층 분화에 상응하는 행위였는지는 분명 되짚어 봐야하는 부분이다. 


양반이라는 신분은 법적 신분이 아니었던 만큼 습득하기 어려운 신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후기에 사회적 분화가 촉진되고 계층간 이동 빈도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결코 아래로부터 위로의 신분적 이동이 문란해졌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양반이라는 신분을 인정 받는 것은 촌락에서 모두가 공인해야만 가능한 신분이었고 단순히 법적으로 병적을 피하기 위한 호적등록상이 양반 혹은 유생은 신분상의 변화라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굳건한 내부적 저항체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양반 계급은 결국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외부적인 충격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후기에 발생한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 식민지 정책은 양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가 혁파될 수 밖에 없었던 외부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외부적 충격이 가한 결과는 시스템적으로 양반계급을 해체하는 과정을 밟도록 유도했지만, 이는 시스템 상의 문제일 뿐 양반이라는 신분 계급을 형성하던 심리적 저항선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구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그들의 기득권은 쉽게 내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타협점과 거리를 두고서 자신들의 저항선을 유지했을 것이다. 이런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2차적 충격은 해방과 한국전정 그리고 농지개혁으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양반 가문들은 나름데로의 자신들 계층을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들을 수행한다. 족보를 발간하고 묘역 조성, 문집발간, 누정 건립, 정사건립을 통한 유학적 거점을 확보하고 강회를 가진다. 이와 같은 작업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작업들을 수행할 수 없다. 농업경제가 완전히 해체되고 공업화가 진행되기 전에 이런 작업들이 많이 진행됐었다. 


한반도에 일어난 공업화에 의한 농촌기반 쇠락과 도시로의 인구 이동 등에 의한 농촌신분제 인구가 도시인구로의 편입되면서 일련의 저항도 무의미하게 남았다. 결국 

신분제 해체의 마지막 과정운 의식적 수준으로 남아서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의식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양반 신분에 대한 물질적 기반은 사라졌고 신분적 차별도 사라졌지만 분명 현대적 의미에서 그 과거의 기억과 풍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사라져버린 구시대적 유물의 흔적들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고 현실적 변화된 가능성에 모멸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양반문화, 유교문화에 대한 기억들이 우리의 기억 저편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양반문화에 대한 향수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며 유령처럼 출몰하는 생명력은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아직고 불현듯 그 망령들을 불러오기 때문이라면, 왜 그 양반문화에 종속되어 있던 노예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회피하는가. 분명 양반문화와 함께 노예 구성은 전인구의 50%까지, 그리고 조선말기에 30%까지 줄었고 완전한 청산을 위해서는 일제시대를 거쳐야했던 그 누추한 삶의 영역은 우리의 기억에서 그렇게 쉽게 잊혀지고 오히려 잊어버리기보다는 무시하고 언급을 회피하는가. 자신들의 과거를 반쪽만 인정하고 그 어두운 반쪽은 그거 덮어버리고 잊은척한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것인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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