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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29. 18:37 - 독거노인

수면위에 잠시 머무는 기억



어릴적 방학때가 되면 왠지 외가집으로 놀러가고 싶은 욕구에 휩싸여 있었다. 문제는 외가집으로 놀러가면 할일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늘 심심한 하루를 보내야했는데도 막연한 그리움에 외가집을 찾곤 했었다.

외가집은 농촌 마을에서도 동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과수원을 하던 외할아버지는 몇번의 이사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외가집은 전라도의 어느 구석진 외로운 산밑의 과수원이었다. 동네의 유일한 친구라고는 어릴적의 윗집 여자 아이가 있었지만, 그곳을 떠나서 신장로 옆의 집으로 이사한 이후로는 가도 친구가 없었다. 신장로 옆의 집도 산밑의 집만틈이나 외로운 집이었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동네라서 오히려 더 낯선 느낌이었다. 

외가집 뒷쪽은 야산이었고 집 바로 뒤는 대나무 숲이었다. 햇빛 따스한 날에는 집에서 기르던 개를 억지로 끌고 올라가서 눕혀 놓고 누워 있는 개를 베게 삼아 누워있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럽다고 만지지도 않았을 털복실개였지만 그때는 유일한 친구였다. 원래는 한쌍을 키웠지만 한마리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와 놀아주던 그 개마저 농약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방학 내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가끔 떠오르는 기억속의 향기는 도라지 밭에서 손으로 터드리던 도라지 꽃과 폭우가 쏟아지던 날 걸었던 돈두렁 길, 그리고 옛집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쳐다본 수박밭의 흙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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