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0. 4. 19. 09:00 - 독거노인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조선의 문인 선비와 일본의 무사집단인 사무라이가 비교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인다. 그리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아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문(文)에 치중했지만 일본은 반대의 길을 걸어 무(武)에 치중하지 않았던가.

이 어울리지 않는 비교 대상에 대한 비밀은 아마 책의 저자에게 있을 듯하다. 일본 사람이지만 한국에 유학와서 귀화한 저자의 객관적 시선과 두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없었으면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책 내용은 단순 비교보다는 논문에 가깝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충분한 논리적 전개를 통해서 어떻게 조선의 선비 전통(유교문화)이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 영향을 주었는지 기술하고 있다.

일본인답지 않게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에서 잡혀간 유학자에 의해서 일본 사무라이들이 어떻게 교화되고 성리학에 영향을 받았는지 자신만의 논리로 설명을 한다. 성리학적 전통이 성립된 후에는 조선에서 오는 통신 사절이 굉장한 국빈 대우를 받게 되었고 이러한 문화는 사무라이 계급속에 뿌리깊게 내리게 된다. 무의 전통속으로 문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것이다. 

반면 조선은 성리학적 문의 기반위에 서 있어서 깊이 심화된 성리학의 배경속에서 왕조에 대한 성리학적 사상 적용으로 당쟁이 발생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쟁에 관해서는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부분이 왜곡되었다고 예전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자는 당쟁은 하나의 와조에 대한 전통성 혹은 왕조의 성립 근거에 대한 의문에 따른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이러한 기저에는 당시 이황과 이이 사이에서 발생하던 이기론의 철학적 논쟁이 기반이 된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성리학 수용은 무인들의 교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두 나라의 차이는 근대에 오면서 확연한 차이를 만든다. 조선에서도 나름 성리학적 전통에서 개화파가 등장하지만 그 근저에는 어쩔수 없는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한 한계를 증명할 수 밖에 없었다는게 작가의 주장이다. 

책에서 근대 부분에 대한 조금 많은 부분이 할애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내가 이해하거나 알고 있지 못하던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역사서로서 좋은 기준이 될 만한 책이다. 게다가 작가가 일본 사람으로서 치우치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