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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5. 09:00 - 독거노인

<82년생 김지영>


타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자신의 인생과 비교를 하게 된다. 이제 나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순간마다 나의 순간과 겹치는 시간들을 비교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음을 실감 한다. 남들은 추풍 낙엽처럼 쓸려 나가던 IMF도 비켜 갔으며, 오히려 IMF로부터 회복될 싯점에 나는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인생의 밑바닥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했을 때가 내 인생의 가장 우울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그렇게 참은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다.


이런 나쁘지 않았던 시간들에는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아니라 남들보다는 조금은 나은 부분에서 시작했던 직장 생활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시작이 좋았다고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남들보다 편하거나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고통은 누구나 똑 같이 힘들다. 하지만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순간부터 내가 남자라서 그리고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적, 암묵적 함의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그런 모험을 감수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여자들의 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고통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사회적 압박감은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며 살면서 나도 사회의 강자처럼 행동하며 살아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 생활하면서 여직원들이 겪어야할 그 어떤 압박감 없이 너무나 편하게 살았던 시기들을 돌아본고 지금 변화된 회사 생활을 바라보면,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전세대가 물려준 그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암묵적 합의된 권력을 이야기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전히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변해 간다. 어떤 때는 그 변화가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요구하던 세대는 어느 순간 뒤로 밀리면서 자신들도 그 변화를 다시금 받아 들여야 하는 세대가 됨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변해 갈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처럼 급격히 도시화와 산업화를 겪은 사회는 그 변화의 기간이 세대간에 걸쳐서 많이 누적되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 누적된 결과 때문에 세대간 갈등도 심각하게 대립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리고 그 세대가 대립 뿐만 아니라 성적 역활에 대한 누적된 모순이 아직도 쉽게 풀리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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