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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31. 09:00 - 독거노인

<at day's close>


중세 1500년대 전까지는 밤이 조용하고 정적잉었다. 천국의 신과는 대조되는 마녀와 사탄은 그리스도적 학문에 의해 전파되었다. 마녀 사냥이 급속히 퍼진데에는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가면서 발생한 기근, 전염병, 자연재해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사회적 약자에게 쏟아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 전 시대 밤에 대한 공포는 사탄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밤은 범죄가 발생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범죄율은 지역과 사회계층, 문화규범, 도시 성장에 따라서 다양한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렸을 때 안전한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산을 지켰던 그들에게 도둑의 침입은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밤은 강도와 도둑들만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다. 밤에는 폭력과 살인이 급증했다. 경계가 느슨해지는 밤에 화재는 큰 재앙이었다. 도시의 밤길은 어느 순간 머리 위로 쏟아질지 모르는 오물과 강도, 각종 폭력이 위협하는 공간이었다.

밤은 신의 섭리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었다. 책이 보급되고 공동체적 스토리 텔링에서 속으로 읽는 내면 읽기가 시작되었고, 이는 내면의 사색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었다. 때때로 first sleep 후에 깨어나서 몽상과 반수면, 묵상,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상류 계층들은 밤이 되면 신분에서 벗어나 길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따른 규범들로 벗어나 낮에는 갈 수 없었던 곳인 술집, 창녀촌 등을 찾아 갔으며, 거리의 폭력에 가담하기도 했다. 밤길을 나선 이들(야경꾼을 포함하여)은 때 아닌 봉변을 당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위협 받기도 했다.


중하류층은 낮이 주는 신분제적, 노동적 억압에서 벗어나 밤이면 자유를 찾아 도주와 회합 등으로 해방감을 맛보았다. 많은 이들이 생계적 이유에서 밤에 좀도둑질에 가담했다. 밤에 자행되었던 젊은이들의 폭력(경찰이나 야경꾼들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은 낮동안 갇혀 있던 질서의 제약에 대한 반항이었으며 다시 낮시간을 이어가기 위한 분출구라고 볼 수 있었다.


밤은 사법권이 힘을 잃는 시간이었지만, 밤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혹독한 가중 처벌이 주어졌다. 하지만 밤에 작동하는 국가권력은 미미했고, 그저 처벌을 강화하는 정도였다. 개인은 스스로 혹은 이웃의 도움으로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사업화 이전의 조명은 너무나 미약해서 간신히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태를 구분할 정도였다. 그 당시의 조명과 현대의 전구와의 밝기 차이는 100배정도 난다. 렌턴이나 횟불이 있어도 간신히 주위의 윤곽정도만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이마저도 없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서 사물과 길을 확인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중에 마주치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는 심했으며, 노상 강도와 낯선 여행자들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무기를 휴대하고 다녔다.


18세가 되어서야 도시의 집들에서 커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그 시기까지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공업화 이전의 사회는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 공동체와 이웃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경계로 열탐과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프라이버시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 평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밤은 어둡고 불길한 시간이며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해야하는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농민들은 수확철에 고식을 야생동물과 좀도둑으로부터 보호해야 했으며 아낙들은 허드렛일 외에도 세탁과 길쌈에 노동력을 투입해야 했다. 길쌈을 위해서 한곳에 모인 동네 아낙들은 남자들로부터 떨어져 동네 소문과 자신들의 농담,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친묵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주로 중,하층민들은 도시에서 휴식을 위해서 맥주집에 모여 유흥을 즐겼다. 상층부 사람들은 서로의 집을 방문하여 파티와 게임, 술, 춤 등을 밤 늦게까지 즐겼다.


근세까지 침대는 가장 중요한 가구의 위치를 차지했고, 상류층은 편안한 수면과 부의 과시를 위해서 침대와 침구류에 투자 했다. 침대에 쓰이는 커튼은 모기나 날파리 등의 해충들로부터 잠자리를 보호하고, 염탐의 눈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가난한 이들은 종종 한 침대에서 방문객을 포함해서 모든 식구가 같이 잤고, 하나의 이불을 사용 했다. 겨울에는 서로의 체온으로 보온을 유지할 수 있으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다.


18세기가 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밤의 계절'이라는 말은 점점 언급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품 유통과 소비는 이에 맞춰서 증가하였고, 밤의 불길함은 사라졌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까지 가스등 설처와 경찰의 창설은 밤 거리의 안전을 도모하게 되었고, 밤의 활동들을 더욱 촉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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