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9. 6. 21. 16:01 - 독거노인

영화 <기생충>


계급 사회이던, 계급이 없는 사회이던 암묵적 계층은 존재 한다. 그것이 물질적인 계층인지 신분적 계층인지가 다를 뿐이다. 물론 물질적으로, 신분적으로 계층이 혼종되어 있는 사회도 존재 한다.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주의가 더 발전하면 할수록 계층간 간격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계층의 극단에 존재 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날 일이 없다. 대부분 계층의 경계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은 상위 계층에 열망하며 그들을 모방하고 싶어하고 그들 바로 윗 계층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계층이던 계급이던 경계선상이 주는 컴플렉스다. 이 경계 선상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속한 계층을 벗어나 극단에 존재하는 이들을 마주 할 일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최하층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대상들로. 최상의 모습은 그들이 모습을 들어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그저 중간 계층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계층처럼 보일 것이다.

 

영화 <기생충>은 서로 만날 수 없는 계층이 서로 접점이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계층이 어느 우연을 통해서, 아니 우연을 가장한 사기를 통해서 접속이 이루어진다. 최상층의 모습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왔는지 알 수 없지만, 화면 속에서 얼핏 보이는 모습들이 우리가 비웃는 졸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 대한 얄팍한 지식만으로 쉽게 사기를 당하고 그 사기를 당하는 순간에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무엇을 흘리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잃어버리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받아가는 쪽에서는 자신들이 평생 얻을 수 없는 기회를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돈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최하층민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받아 들이고 누적되어 있는 고통에 한꺼플을 더 얹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고통이 언제쯤 사라질지에 대해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과 걱정은 현실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개택 가족이 박사장의 집을 빠져 나와서 끝없는 나락의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장면이다. 비오는 어두운 골목길을 뛰어 깊은 수렁 같은 담벼락을 타고 내려가는 계단 씬은 다층적 암시를 보여준다. 결국 기택의 가족은 맛봐서는 안되는 금단의 열매를 베어 물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 당한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금단의 열매를 맛본 댓가에 대한 징벌이다. 그들의 죄를 씻어낼 비와 한줌 숨쉴 공간마저 빼앗기고 영원히 떠돌아야 하는 추방자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다. 금단의 열매를 베어문자가 자신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꿈꾸는 천상의 순간들. 그 꿈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꿈 속 무간지옥의 나락 끝짜락에 있을 뿐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무간 지옥.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의 단편  (0) 2019.07.14
너무나 비현실적인 하루  (0) 2019.06.24
[넷플릭스] 미드와이프  (0) 2019.05.15
[넷플릭스] 소공녀  (0) 2019.05.07
내 기억 속의 봄날들...  (0)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