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한묘(秋日閑猫: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2009.5.17~2009.5.31
간송미술관
지난 토요일 아침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회사에 출근하여 멍하니 화면만 쳐다보다가 퇴근했다. 마음은 무겁고 명동은 혼잡하고 갈곳을 잃어버렸다. 4호선이 가는 간송미술관이 머리에 맴돌았고 오늘이 아니면 갈수 없을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성북동은 내가 어릴적 잠깐 살았던 곳이다. 내가 가진 기억은 골목길 몇개와 집 윗쪽의 언덕길 이상을 벗어나보지 못했다는것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 외국인과 친구로 지낸다고 했다. 그 외국인이 살던 집은 내가 살던집과 아주 대조적으로 넓은 마당을 통해서 잘 가꾸어진 집이었던 것 같다. 단 한번 그집에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일어를 하시지만 영어를 못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그 외국인을 알게되었을까.
한성대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성북동 길은 정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그 부촌으로 들어갈 능력은 안되지만 그냥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길가에 있는 부동산에 걸린 광고판을 보니 성북동도 재개발되는가 보다.
한참을 걸어서 간 간송미술관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깊은 숲속에 파묻혀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역시나 사람들은 많았고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비좁았다. 줄을 서서 천천히 봐야할 뿐만 아니라 줄이 서로 엉켜서 제대로 볼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보상해줄 정도로 그림들은 좋았고, 동양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내게도 겸재의 그림들은 마음속게 깊이 와 닿는다.
겸재의 그림들 덕분에 마음속 깊은 곳에 담겨 있던 무거운 돌덩리가 조금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간송 미술관에 전시를 위해 있는 가구들도 그 손에 와 닿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이 흘러서 세월의 때가 묻어 우러나는 풍미을 가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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