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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0. 09:00 - 독거노인

<쟁점으로 읽는 중국근대 경제사>


중국처럼 넓은 대륙에 그 많은 인구가 살아온 역사를 보면 과연 그 무수한 작용과 반작용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일관되게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청조에서 자본주의 체계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붉은 혁명으로 인한 공산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질곡을 가진 거대한 대륙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청조 시대는 중국문화의 황금기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번영되고 안정적인 정치상황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었다. 물론 중국 인민들의 반란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 민중의 반란이 없던 시대는 없었고 왕조의 시대에 민중으로 사는 고통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근세로 넘어오면서 안정적 농업산출과 인구 증가는 중국의 경제가 발전을 구가하고 서양적 산업혁명을 위한 기반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인구 증가와 식량증가적 측면은 존재했지만 그것을 증명할만한 자료는 제시되기 어렵다. 넓은 땅덩어리와 각 지역성들간의 격차 그리고 문헌적으로 남아 있지 않은 근거들. 이 모든것이 상황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18세기와 19세기를 연구하는 학자들간의 수많은 간극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추론과 유추를 통해서 파악되는 경제적,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내가 아는 중국은 18세기를 거치면서 늘어나는 인구의 압박으로 지속적인 개간 사업을 벌였으며, 19세기에 이르면 이미 개간될 수 있는 황무지들과 산야는 거의 다 개발됐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곧 경제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인구팽창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유교적 이데올러기 때문에 노후의 대책의 공식적인 복지 수단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유럽의 산업혁명처럼 늘어나는 소비인구와 경제적 수단을 가지고 왜 산업혁명 혹은 근대적 생산기반으로 이행되지 못했는가이다. 지속적인 발전을 이야기하는 서구적 시선으로는 생산량 증가 즉 총체적 생산 산출물이 곧 경제적 부의 원천이라고 믿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가 더 나은 생산기반을 향해서 진일보할 것이라는 서구적 사상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의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적 사상의 농업 기반은 효율적인 농업 생산과 소비를 요구하지만 혁명적 전환 사고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게다가 유럽의 경우 자체적 생산기반으로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기 보다 식민지의 자원 약탈과 유입으로 지속적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한다. 

중국이 외국과 접촉으로, 그리고 강제개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기 보다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자기 생산기반에 머물렀다는 것 혹은 그 영향력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아편을 수입하기 전까지는 수출이 수입보다 많았으며 꾸준한 은의 유입이 있어서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장기 성장 추세에 있었다는 가설이 오히려 더 선호된다. 이러한 것을 보면 거대 중국을 단편적인 서구시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에 의한 다양성, 지속성, 주체성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청조 말년의 무능과 부패가 비난받지만, 몇백년을 지속한 통치력이 가져온 안정성이나 추동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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