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7. 7. 17. 09:00 - 독거노인

<편의점 인간>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는 어디에나 소음이 존재 한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그 공간이 만드는 소음은 장소에 대한 기억이나 장소에 연결 장식 같은 존재가 되어, 그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과 하나가 된다. 소설은 그런 장소가 주는 소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결에 흘려 버리는 소음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소음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에 자신이 느끼는 소속감을 설명하는 주인공. 이 도입 부분에서 왠지 하루키의 소설이 생각 났다. 왜 그럴까? 일본 문학을 번역할 때 느껴지는 미세한 문장의 느낌 차이가 스며든걸까? 아니다 <1Q84>에서 느껴지던 그런 무감각한 인간의 전형이 느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에 적응해서 무감각하고 모든 것에 한치도 벗어남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시계적 패턴 생활에서 일탈하지 않는 삶. 그런 삶이 여기서도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결코 하루키의 소설과 괘를 같이 하지는 않다. 현실을 파고 드는 예리한 칼날이 아주 좁은 공간, 한정된 편의점이라는 공간 속에서 가슴 깊숙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파고 든다. 손님으로써 어쩌다가 들르는 편의점은 없으면 불편하지만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지 않은 공간이지만(가게가 없어진 동네에서 필수적인 공간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작은 세상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에 맞춰서 상품들을 준비하고, 어떤 상품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눈에 띄도록 배치되며, 날씨에 따라서 더 많이 준비해야 되는 상품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편의점을 운영하는 매니저와 알바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 그 좁은 공간에 소속이 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얼마나 많을까. 마치 시하라가 이야기하는 조몬시대(원시시대)와 현대 사회가 무엇이 다른가라고 던지는 질문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고 결혼할 기회조차 박탈 당하는 경쟁의 시대라고. 삶은 지속되고 세상은 더 발전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사회적 시스템이 부여한 역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의문을 던지기 어려운 사회다. 아마 일본 사회의 보수적 한계가 한국 사회보다 더 옥죄는 역활을 하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한국도 결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저 소비되는 인생을 살거라면 그냥 사회적 잉여인간으로써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런 잉여인간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가진 돈이 없다면 결국의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고, 인생의 밑바닥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쓸쓸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시스템이 던지는 메시지를 어느 누가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직설>  (1) 2017.08.21
혼자하는 Drawing  (2) 2017.07.24
원주  (1) 2017.07.10
남겨진 것들  (2) 2017.07.03
동네 한바퀴  (1) 201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