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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8. 11:17 - 독거노인

<매일매일 좋은 날>


일본 다도는 사무라이 문화가 만들어낸 형식주의의 극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본 다도가 가지는 형식적인 면들을 봤을 때 일반 농민이나 하급계층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는 부와 시간이라는 요소를 기본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도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를 마시는 행위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한잔의 차를 만들고, 단순히 차만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족자를 걸고 다도를 위한 거실을 준비하고 다기들을 준비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차를 준비하는 과정에 모든 것이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한다면, 어떻게 일반인들이 그 격식을 공부하고 익히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는가. 일반 농민이나 하급 계층에게는 자신의 노동이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시간은 자신의 삶이 부식되는 시간이다.

 

"일일시호일"은 그런 다도가 가지는 형식미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의 뒷면에 존재하는 다도와 일상의 삶이 연결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날 그날에 따라 상황에 맞는 족자를 걸고, 계절에 따른 다구를 준비하고 다완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잘게 쪼개져 일상에 켭켭이 쌓여 있는 무수한 의미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한잔의 차를 홀짝 마셔 버리고 끝난다면, 차의 맛을 평가하는 데 모든 에너지가 들어가겠지만, 그 차를 만들기까지의 공들인 시간은 사색의 시간을 같이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사실 유투브에서 찾아 본 일본 다도의 영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책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잠깐의 숨 쉴 공간도 없이 빽빽히 진행되는 다도의 장면은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느 쪽이 진정한 다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다도를 통해서만이 공간과 시간을 느끼는 것은 아닌다. 단순히 차 한잔을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차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입 안에 감도는 여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차가 주는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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