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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6. 09:00 - 독거노인

<작은 것들의 신>


그는 자기의 목숨이 얼마나 오랫동안 부지될지, 또 집에 귀퉁이가 넷 이상 있는 사람들은 나머지 귀퉁이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귀퉁이가 남아돈다면 그들은 자신이 죽어나갈 귀퉁이를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코친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그늘 속으로 숨어들지 않아도 한낮의 더위를 나를 위로해 줄 위안이 있었다. 바닷가인지 강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내리워진 그물망들이 풍경의 일부를 이루고 인도의 많은 관광객들이 그 앞에 늘어선 생선가게를 지나쳐다니다 저녁을 위한 생선을 사는 곳이다. 사실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은 포트 코친과 해변가가 주를 이룬다. 포트코친 건너편의 에르나쿨람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눅눅한 누더기를 한거플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코친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총천연색의 열대지방이 아니다. 코친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아예넴을 무대로 영국 식민지 시절을 겪은 마마치와 파파치로부터 시작하는 흑백 영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힘과 색을 더해 컬러영화로 변해가는 공간이다. 인도에서 분명 상위 계층에 속하며 자신들이 가진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타인의 약점을 깊이 파고 드는 그 악랄함을 감춘, 사회적 모순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사회적 약점들 덕분에 자신들의 서 있는 위치가 더욱 견고하게 느끼는 안도감에 위안을 얻는 집안이다.


쌍둥이가 속하는 과거는 자신들이 만들어온 역사를 지우기 위해서 희생의 제를 올리는 무희의 칼날에 서린 한기마냥 위태위태하게 이어온 시간들이다. 하지만 거기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고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들은 그들이 속한 시간에 충실했다고 강변하는 것만 같다. 어쩌면 아무가 그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역사에 침을 뱃기 위해서 시공간을 건너 뛴 사랑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무가 만든 시공간속에 붙잡힌 라헬과 에스타 쌍둥이는 영원히 그 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의 배에 남아 있는 7개의 임신 흔적처럼 영원히 쌍둥이를 각인시키는 공간이고 아무가 만들어 놓은 사랑과 용서의 공간이기도 하니까.


나를 맞이한 남인도 사람들은 수많은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충혈된 눈과 그 손에 들린 챠이잔은 낯선 이방인에게 여기는  기독교를 믿는, 카스트 제도가 없는, 북인도와 다른 세상임을 알리는 것 같았다. 이런 낯설음을 더욱 증폭 시켜줬던 카타칼리는 소설 속에서 너무나 속절없이 변해가는 인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돈을 위해서 신을 버린 이들로 등장한다. 오직 신을 위해서 자신들을 바치던 일들이 이제는 돈을 위해서 자신들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사원에서 한판 굿판을 벌인다. 그리고 그들이 속하는 세계로 다시금 기어 들어갔다. 어쩌면 마마치와 파파치가 살던 색깔이 없던 시절부터 코차가 문을 부셔버리고 모든 것을 박살내던 순간의 인도는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색깔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남인도도 결국은 인도의 일부일 뿐이며 그들의 뿌리속에는 카스트 제도가 깊이 박혀 있었고, 그것은 사회적 계약관계 속에서 가족들이 기억하는 과거이며, 가족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역사속에는 가장의 권위에 의존하는 남편의 폭력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상기 시키고 있다. 굳이 인도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아도 그들이 기억하는 저편 가까운 곳에는 구질서가 아직도 그 힘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기억의 편린들이 박혀있으며, 그 편린 속에 살아 숨쉬었던 계급을 뛰어 넘는 사랑도 있었다. 


안녕 인도, 굿바이 코친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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