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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4. 09:00 - 독거노인

<일본 근대의 풍경>


오지 야스지로의 영화에는 특유의 다다미 샷이 존재하지만 철도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영화 전성기와 배경에 해당하는 일본의 50~60년대는 패전의 잔해에서 경제적 성장 가도를 달리던 때이다. 그때는 이미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선 일본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대적 삶속에 등장하는 다다미 샷은 일본의 오랜 전통생활 방식이 전하는 눈높이를 보여주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철도 풍경은 현대적 삶속 깊숙이 침투한 문명의 이기의 강인함 혹은 배제될 수 없는 물질문명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이 서구에게 개방을 하고 근대로의 이행을 오래전에 이룩했지만 일본 전통 생활 방식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고 서서히 변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 변화의 시간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속도가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벗어나 얼마나 광폭하게 달려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문호를 서양에 개방한 순간부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서구의 물질문명을 받아들이고 전근대적 삶을 근대적 삶으로 바꿔놓기 위해서 적극적 행동을 했을 때 가해지는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어둠속(물론 에도와 같은 곳을 벗어난 곳)에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시절을 경험한 전근대적 인간들에게는 어느날 등장한 가스등이 밝히는 불빛이 태양과 같은 밝기로 빛났을 것이며 그들을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과 사람을 실어 날으는 기차는 혁명적 물질문명이었을 것이다. 좁은 공간과 자연이 부과한 시간속에서 어느 순간 그들의 시간과 공간은 일본 전국으로 확장되었으며 거시적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어 버린 근대의 모습은 이미 태어날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던 우리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충격이었을거라 추측만 해 본다. 지금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지구가 동시간대에 살게된 충격은 이미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서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거나 묻혀 버렸듯이 에도 시대 사람들이 받아 들인 시공간의 확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하고 어느 순간 일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 일상이 되기까지는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 공간속에서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을 했을 것이다.  


몸부림은 책의 한구석에 아주 적은 부분에서 암시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송두리째 휩쓸리고 있을 때 시대를 주도하는 자들이 아닌 일반 인민들은 놀랄 수 밖에 없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동조를 하고 때로는 무저항적으로 받아들이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블랙홀 같은 거대한 황홀경 앞에서 자신의 직업을 구하고 생계를 구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 너무나 급박하게 변해버리는 세상이기 때문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직업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측에 서 있던 사람들은 또 그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도 못하고 사라진것은 아닐까?


권력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굳건한 성안에서 어떤 외풍이 불던지 자신들은 편안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특권을 지우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 문물의 수입자였고 수혜자였다.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길 원한건 아니었을까? 자신들이 들여온 문물이 성 밖 외풍에 그대로 노출된 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작용하던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받아들인 근대 물질문명이 결국은 자신들이 서양으로 받아야만 했던 폭력을 그대로 아시아에 투영함으로써 그 결과를 참혹한 결말을 가지도록 만든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책에는 그 역사적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암시적으로 그 사건들과 침략에 대한 배경적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어떤 회한을 보이기보다는 반성을 통한 새로운 탐색을 들여다봐야하는 것이 정당한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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