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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1. 09:00 - 독거노인

<파이 이야기>


인간이 고립된다는 것은 어떤 절망감을 불러 올까? 만약 사회로부터 고립된다면 고립된 인간이 스스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고립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것이라 생각된다. 사람들간에 존재하는 관계가 절연되는 것은 살아가는 긴장감과 유대감 그리고 생존을 위한 안정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이 과연 이런 상황에 놓인 인간에게 구원이 될 것인가?


파이가 갇힌 고립의 의미는 자연에 의한 철저한 고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유대와 인간간에 존재하는 연대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 지원 자체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마치 파란색으로 둘러싸인 조그만한 사각 방에 갇힌 것과 같을 것이다. 어디로 나아갈 수도 없고 오로지 주어진 장소에만 한정되어 고립된 이미지. 이런 고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의식주도 있지만 결국은 살아 남아야한다는 의지와 긴장감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혼자만의 긴장감과 의지는 무한히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먼지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쉽게 포기될 수도 쉽게 단념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는 그 조그만한 공간속에서 같이 존재하는 뱅갈 호랑이의 존재가 그토록 소중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각인 시켜주는 존재이지 자신의 생명력을 이어지는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좋은 장치이기 때문이다.


고립된 파이가 가지는 신에 대한 열정보다는 현실 속에서 같이 존재하는 생명체가 자신의 삶을 더 쉽게 자극하고 일깨워 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혹독한 자연속에 고립되어 있지만 또한 자연에 대한 투쟁으로 생명을 이끌어 가는 장면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 시킨다. 둘다 바다라는 공간속에 고립되어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외로이 투쟁하는 장면은 인간이 가지는 삶에 대한 애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기력감에 노출되어 스스로 포기한 인생보다 처절한 상황에서 집착하는 삶에 대한 투쟁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한 투쟁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 에너지일 것이다.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나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그 드넓은 바다 공간을 상상하기보다는 좁은 사각형의 바다를 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도 모노톤의 단조로움으로 가득한 바다일 것이다. 이안 감독이 만드는 그 생명력이 넘치는 바다는 진정 그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소설에서 느끼는 강인한 집착과 자연이 가지는 혹독함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역활을 한다. 하지만 내가 인도의 폰디체리를 방문하고 인디안 섹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지게 만든 것도 이안 감독의 영화 덕분이니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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