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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6. 09:00 - 독거노인

<엄마의 도쿄>


사람이 어떤 특정 장소를 기억하는 것은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기억속의 공간이 주는 특별함 때문일까? 아니면 그 장소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공유했던 곳이기 때문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공유했던 공간도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바라보는 그 공간과 함께 묶여 있는 것만이 확실할 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랑들 중에서 세인의 가슴과 기억 속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연인간의 사랑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들은 각기 가지는 의미도 다양하지만 그 깊이도 제 각각이다. 둘이 동일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연인간의 사랑과는 달리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깊이가 다르다. 연인간에는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이기 때문에 둘이 일치하는 만큼의 깊이지만, 부모와 자식간에는 이런 상호의존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식의 사랑은 금방 속내를 들어낼 정도로 낮은 갯벌같은 사랑일지라도 부모는 그 심연의 깊이를 들어내지 않는 깊은 곳에 묶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자식들을 위해서 부모로써 희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모녀에게 현실이란 얼마나 혹독할까? 그 혹독이라는 단어가 나만의 상상이 만들어낸 공허한 의미일까? 아니면 혹독하다기보다는 외롭움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면 그 의미가 이해될까? 누구나 먹고 살기에는 현실은 혹독하고 외롭다. 그렇지만 자신이 속하는 사회에서 편견과 선입견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타인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맞닿드리는 혹독함과 외로움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 혹독함과 외로움을 뚫고 똑바로 서 걸어가는 것은 두 모녀가 서로에게 다둑거리는 위안과 사랑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다둑거림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며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하며 보답하는 사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도쿄 곳곳의 맛집이나 아름다운 거리, 카페 등은 그런 의미에서 특정 공간속에 존재하는 부모와 자식이 맞닿아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맛있고 좋은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변해버리고 자신이 변해서 그곳이 더 이상 별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곳에 묶여 있는 기억과 따스함을 주는 시간은 결코 변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서 소중하게 붙잡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문뜩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햇살이 좋은 날 하늘에 대고 비춰본다면 작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그때의 시간을 다시금 돌려줄것만 같은 존재다. 그런 기억을 남겨준 부모가 있다면 자식은 그 기억만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속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위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예전 도쿄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잠만자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구경하고자 열심히 돌아다니던 시간이었다. 그 숙소에서 아침을 먹을 때면 숙소의 할머니가 저녁은 꼭 들어와서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던 생각이 난다. 어떻하면 한끼라도 더 먹이고 더 맛있는 걸 해주고 싶어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그 따뜻한 배려를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때는 그저 밥한끼 먹는것보다 한순간이라도 도쿄의 명물이나 신기한 것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시절의 도쿄 모습보다는 숙소의 그 할머니에 대한 온정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왜 저녁 한끼만이라도 먹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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