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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8. 09:00 - 독거노인

<깊은 강>


종교가 전파되는 과정은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흡수하는 속에서 그 나라만의 변형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는 과연 얼마만큼 순수성을 유지할까? 또한 종교란 선지자가 이야기했던 말씀(TEXT)들이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서 기록되고 전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지자가 이야기했던 그 말씀이라는 것이 얼마만큼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스피노자는 기독교 입장에서 볼때 순수주의자일까? 이단일까? 그는 신이 창조한 만물에 대해서 인간만이 사랑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판단하는 선과 악은 우리 속에 존재하는 미움과 증오, 시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며 결국은 신에게 다가가고 신의 말씀에 충실하는 것은 사랑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깊은 강>을 읽으면서 오쓰가 이야기하는 신에 대한 생각들은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신에 대한 생각과 가깝다. 오쓰는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유럽으로 전통적인 기독교를 배우러 떠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그곳에서 이단으로 배척받고 결국 그가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 겐지스 강이다. 혼돈만이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인도. 하지만 혼돈은 무질서를 뜻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의 존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질서 속에서는 무엇이 으뜸이고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 그 자체로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아우르는 갠지스강. 인도인들은 자신의 업을 씻어 내리기 위해서 그곳을 찾는다. 그리고 갠지스 강은 모든 업을 수용하고 그것을 씻어내주며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잠시 자신만의 사연을 안고 갠지스 강에 모여 든 것이다. 그들이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갠지스 강을 찾아왔지만 갠지스 강은 그들에게 어떠한 방식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이 단지 갠지스 강을 다르게 바라볼 뿐이다. 무릇 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신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할지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신에게 우리는 경배를 들고 있는 것이다. 갠지스 강처럼 포용하는 신이 될 수도 있고 오로지 섬기는 자만을 위한 신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모습을 하던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삶에 존재하는 신은 어떤 모습인가?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얻어야하는 인생의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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