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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1. 13:14 - 독거노인

[넷플릭스] 소믈리에


와인을 공부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의 물방울>을 들었다놨다 한적이 있었다. 와인이 세간에 오르 내리고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달콤한 유혹들을 품고 있어서 와인을 꼭 공부 해 봐야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포도가 만드는 그 독한 알코올의 향이 과연 왜 음식과 쌍을 이루고 사람들을 매혹 시키는지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여러 소믈리에가 등장하지만 결코 비싼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비싼 와인은 비싼 만큼의 여러 맛들이 더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싼 와인이 결코 맛없다거나 나쁜 와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 어떤 소믈리에는 결국 10유로짜리 와인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 한다(우리나라에서 2만원쯤 하는 와인들일까?). 결국 와인을 맛보는 사람이 그 가치를 느끼는 게 중요하지만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모두가 와인에 대해서 현란한 미사어구를 남발하며 와인을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와인의 가격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아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오래동안 고숙성된 와인들의 가치다. 그것은 끊임 없이 변하는 토양과 사람과 시간을 담고 있는 생명체이며,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귀한 가치는 결국 비싼 가격을 요구하고 그만큼의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이 즐기는 호사이지만, 소믈리에들조차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검붉었던 와인의 색깔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고 분홍빛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와인 맛도 그 시간만큼 차이를 만들고 오랜 시간이 주는 맛을 품게 된다고 한다.


미국 와인은 밝고 경쾌하며 가볍다. 프랑스 와인은 강건하고 힘차다. 이태리와 스페인 와인은 진득하고 꾸리꾸리하게 감기는 맛이 있다. 와인과 치즈의 맛은 닮아 있다. 치즈에서 느껴지는 풍미는 그 나라의 풍토와 연결되고, 와인도 그 치즈가 풍기는 풍미를 끌어 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결국 와인도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내 감각 기관들이 좀 더 싱싱하고 더 민감하고 퇴화되지 않았을 때 와인의 맛을 알았다면, 아마 지금의 내 모습과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본다. 어쩌면 내 성격상 알 수 없는 깊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돈과 시간을 탕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돈도 시간도 내 혀의 감각도 모두가 퇴화해 버린 싯점이고 그저 약간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